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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내가 네게 묻는 거슬 대답할지니라 
본문말씀 욥기 38:1-7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8-10-21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욥기 38:1-7
 
“인간은 인간에게 말하는 것을 배우고 신에게 침묵을 배웠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당장 기도를 드려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답답할 때나
속 시원한 말씀 한마디가 없어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욥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만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욥에게도 아주 오랫동안 침묵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이런 욥을 보고 하나님께 뭐라고 했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욥도 자기가 누리던 모든 것을 잃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서 욥을 직접 시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욥은 이런 사탄의 시험 때문에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재산도 잃고 가족도 잃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이방의 침략자들이 욥의 소 떼를 빼앗아가고 종들을 죽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양 떼와 종들이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또 다른 침략자들이 쳐들어와 욥의 낙타 떼를 잡아가고 종들을 죽였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있는데,
이번에는 욥의 자녀들이 한 집에서 잔치를 벌이다가
집이 무너져 모두 죽고 말았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거기다 욥 자신도 심한 피부병을 앓게 됩니다.
그러자 아내까지도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말을 남기고는 떠났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욥 자신도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욥은 이런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서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욥기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욥기 42장 가운데
처음 1-2장과 마지막 42장만 가지고도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나머지 3-41장은 무슨 내용입니까?
3-37장까지는 욥이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이런 논쟁이 쉽게 끝나지 않고 아주 지루하게 반복되는데
그 이유는 욥과 친구들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친구들이 욥을 찾아온 것은 위로하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친구들이 욥에게 한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욥이 고난을 겪는 것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의로운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욥도 잘못한 것을 회개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겪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그래서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서 친히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회개하라는 말을 할 때마다 욥이 뭐라고 했습니까?
욥이 한 말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자기는 회개할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욥에게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회개할 것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의롭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의롭다는 말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봤을 때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의롭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욥도 예외가 아닙니다.
실제로 욥을 보고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욥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욥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가 의롭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가 회개할 죄가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욥이 재산을 잃었을 때는 물론이고
10명의 자녀를 잃었을 때도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욥이 심한 피부병으로 건강을 잃었을 때도 침묵하셨습니다.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면서 떠났을 때도
전혀 말씀이 없었습니다.
자기 생일을 저주할 때도 한마디 말씀이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논쟁을 벌일 때도 여전히 침묵하셨습니다.
1장과 2장에서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 말고는
37장까지 말씀 한마디가 없었습니다.
욥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가 볼 때도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말씀을 하시기 시작한 것이 오늘말씀입니다.
그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우리 생각 같으면 먼저는
욥이 무엇 때문에 고난을 겪었는지를 알려주셔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또 억울하게 고난을 겪은 욥을 위로해주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욥이 겪은 고난의 이유에 대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하게 고난을 겪은 욥을 위로하시는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욥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이 무엇입니까?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기 38:2).
얼핏 보면 그냥 질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새 번역에는 같은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욥기 38:2)
그냥 질문하는 말씀이 아니라 욥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욥으로서는 하나님이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자기가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잃었을 때도 침묵하시고
자녀가 죽었을 때도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건강을 잃었을 때나 아내가 떠났을 때도
하나님은 한마디 말씀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저주할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셨습니다.
친구들과 지루하게 논쟁을 벌일 때도
하나님은 전혀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하시는 말씀이
왜 무지하고 헛된 말로 하나님의 지혜를 의심하느냐고
야단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번역으로 된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욥기 38:4-6)
하나같이 욥이 겪는 고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의 모든 이치 속에는
욥이 겪는 고난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에
고난을 겪는 욥도 살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욥이 겪는 고난과 관계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간관계를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도 분명히 친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친한 사람만 사랑하시고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하시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를 기준으로 봐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특정한 사람이나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의 제자들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가치나 생각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면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우리로 보면 일제강점기와 같은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 중에는
로마제국에 대해서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마태는 세리로서 로마제국의 앞잡이 같은 인물입니다.
그에 비해서 시몬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서 로마제국에 맞서는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러니 마태와 시몬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면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예수께서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으로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에는 어느 누구 예외 없이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화나고 슬픈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쁘고 즐거운 일만 주관하시는 분이라면
속이 상하고 슬픈 일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속상하고 슬픈 일만 주관하시는 분이라면
기쁘고 즐거울 때는 찾지 않아도 되는 분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쁘고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속상하고 슬픈 일도
함께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삶 전체를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욥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대했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기 42:6).
분명히 친구들이 잘못을 회개하라고 할 때는 끝까지 논쟁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는
자신을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모든 희로애락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기쁘고 즐거운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이어지고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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