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어
NEWS
http://www.songcheon.net/sc_home/xe/files/attach/images/37583/5c9301f7269e30f1b60e6bf0345865c7.png
목회자칼럼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시편 118:6-12

우리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도
세상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좀 쉽게 생각해서 일주일 동안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과
세상에서 지내는 시간을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은 세상에서 지내는 시간에 훨씬 못미칩니다.
그만큼 우리 그리스도인은 좋던 싫던 간에
세상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쉽게는 양극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쪽 극단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완전히 세상에 휩쓸려서 세상 사람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는 경우입니다.
물론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의 극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무조건 악하다고 생각해서 세상과 완전히 등을 지내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세상과 완전히 등을 지면 세상에 휩쓸리지 않아서 좋을 것 같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세상에 휩쓸리는 것 못지않게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켜 주셔서
지긋지긋한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너무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종살이에서 벗어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40년 동안 떠돌아다녀야 하는 광야생활이었습니다.
이 광야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종살이라도 좋으니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출애굽 이후에 이렇게 힘든 광야생활을 40년 동안 겪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 정착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더 이상 종살이도 하지 않고 더 이상 떠돌이 생활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 약속의 땅에서도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방 민족과 어울려 살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방 민족은 이방 신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면 되니까
아무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모든 생활방식을 신이 지배하고 있었고
믿는 신이 다르면 모든 거래나 관계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조건
이방 민족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방 민족이라도
때로는 동맹을 맺고 협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고
그래서 이런 동맹과 협력을 인정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이방 민족과의 동맹과 협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많은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방 민족과 동맹을 맺고 협력을 한다는 것을 구실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세상을 등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세상에 휩쓸려서도 안될 것입니다.
세상과 어울리되 믿음을 지키면서 어울리라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파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을 드러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다가
상대방과 맺은 인간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 말씀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6-9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편 118:6-9).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식하기 쉽습니다.
상대방이 지위가 높고 힘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많이 의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편말씀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편이 되시면
그 어떤 사람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인정을 해도
내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베키 티라배시)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믿음을 드러낼 용기나 능력이 없을 때
필요한 몇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우선은 나의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성경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내 감정이나 내 기분에만 좌우되는 믿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내 감정과 내 기분에 좌우되는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도 늘 흔들리는 모습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믿음을 드러내고 싶어도
마음만 간절할 뿐이고 실제로는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내가 먼저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알아야
믿음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안다는 것이 지식으로 아는 것만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보의 글에서 보는 것처럼
성경을 아는 것도
성경이 우리를 알고 성경이 우리를 끌어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것입니다.

물론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말씀과 함께 기도도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통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을 드러내는데
필요한 도우심을 얻을 수도 있고 인도하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을 드러내고자 할 때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이렇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이겨내고
우리의 믿음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을 드러내는 방식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믿음을 드러내는 쪽은 우리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쪽은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에 우리의 믿음을 드러낼 때는
드러내는 그 자체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우리의 믿음이 진실이고 진리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강요하는 식으로 믿음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논쟁을 벌이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우리의 믿음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믿음을 드러내는 것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실을 통해서 믿음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3:15-16을 찾아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15-1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9 완전한 모습을 향하여 관리자 2019.08.07 9
268 주기도문 단상 관리자 2019.07.28 7
267 [목회서신]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관리자 2017.11.14 152
266 [기독교 교양] 시간 관리를 위한 실천 지침 황현석 2014.03.28 794
265 [기독교 교양] 시간을 대하는 자세 황현석 2014.03.21 561
264 [기독교 교양] 믿음의 변화를 위하여 황현석 2014.03.07 766
263 [기독교 교양] 거듭남의 증거 황현석 2014.02.21 675
262 [기독교 교양] 말씀을 전하고 나누는 일 황현석 2014.02.14 485
261 [기독교 교양] 복종의 미덕 황현석 2014.02.07 774
260 [기독교 교양] 그리스도인의 섬김 황현석 2014.01.24 635
259 [기독교 교양] 섬김의 삶 황현석 2014.01.10 654
258 [기독교 교양] 그리스도인의 물질관 황현석 2014.01.04 972
257 [기독교 교양] 그리스도인의 노동윤리 황현석 2013.12.20 662
256 [기독교 교양] 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황현석 2013.12.06 706
255 [기독교 교양] 일상적인 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황현석 2013.11.29 700
254 [기독교 교양] 그리스도인의 직업관 황현석 2013.11.22 845
253 [기독교 교양] 근심과 걱정에 대한 자세 황현석 2013.11.08 896
252 [기독교 교양] 죄와 잘못에 대한 자세 황현석 2013.11.01 753
251 [기독교 교양] 참된 믿음의 교제를 위하여 [1] 황현석 2013.10.25 719
» [기독교 교양]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황현석 2013.10.11 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