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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골로새서 3:16-17

신앙요리문답에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삶 전체를 바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또 오늘 함께 읽은 골로새서 말씀을 봐도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요리문답이나 이 말씀을 잘못 오해하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무슨 일이든지 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왜 오해이고 착각이냐는 것부터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5:29을 한 번 보십시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 5:29).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와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을 때서 하는 말입니다.
대제사장이 왜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전하느냐고 하니까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는 말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구약에도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범하라고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로 그리스도인이 도둑질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강도짓을 주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습니까?
물론 도둑질이나 강도짓은 누가 봐도 죄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면
잘못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결과가 좋으면 수단은 나빠도 상관없다는 것이고
마지막이 좋으면 그 사이에는 잘못이 있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도둑질과 강도짓은 누가 봐도 잘못이고 죄입니다.
그런데 만일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도둑질과 강도짓이라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런 경우에는 목적이 선하니까
아무리 도둑질과 강도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눈감아줄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도둑질이나 강도짓은 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은 목적을 앞세워서
나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가족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8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8).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일을 평가할 때
우선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에서 더욱 멀어지는 일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또 내가 하게 되는 일이
과연 가족에게도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저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달란트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그냥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설사 잃어버릴지 모르는 위험이 있다고 해도
열심히 사용하는 것이 달란트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서 25:21, 23을 보십시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태복음서 25:21).
이 말씀은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잘 사용해서
열 달란트를 만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태복음서 25:23).
이 말씀은 두 달란트를 잘 사용해서
네 달란트로 만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21, 23절을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씀입니다.
만일 양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라면
더 많이 남긴 사람에게 더 좋은 평가를 마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씀을 보면 열 달란트를 만든 사람과 네 달란트를 만든 사람,
이 두 사람에게 하는 말이 글자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남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사용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달란트를 잘 사용하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좀 거창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세상이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가진 달란트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일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도
우리가 하는 일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한일서 4:8을 한 번 보십시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요한일서 4:8).
이것이 바로 일을 통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는 것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도 덕을 끼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또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골로새서 3:23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로새서 3:23).
주보에 실은 글을 보자면 이것이 바로 청지기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지기 정신이라는 말은 교회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사용되어 왔는데,
사람들에 따라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헌금을 드리는 것이
청지기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청지기 정신은 삶에 임하는 정신 자세이며,
일을 할 때 필요한 동기부여이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서 12:15에서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청지기 정신은 우리의 재능, 시간, 물질이
모두 하나님께 속한다고 믿는 정신이다.
그분이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맡기신 목적은
그분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함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베푸느냐이다.
얼마나 챙겨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용하느냐이다.

청지기 정신은 단지 물질과 관계된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재능 및 우리의 애착의 대상과도 관계가 있다.
선한 청지기 정신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다.
마르틴 루터는 “사랑의 표현은 이웃에게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사도 요한도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이다”(요일 4:20)고 했다.
내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은 사람은
청지기직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청지기직을 통하여 사랑을 베풀수 있는 기회를 즐거워한다.
우리 자신이 쌓아올린 어둡고 작은 나만의 성을 박차고 나와서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부활의 주를 의지하는 것이 청지기 정신의 본질이다.
(오스왈드 호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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