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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기독교 교양] 거듭남의 증거

황현석 2014.02.21 06:03 조회 수 : 663

거듭남의 증거

고린도후서 5:16-17

가을을 보내면서 많은 교회들이 명칭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새로운 믿음의 가족을 초청하는 전도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도축제를 통해서
실제로 많은 믿음의 결실을 거두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축제를 한다고 해서
모두 믿음의 결실을 거두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교회가 전도축제를 하는 이유는
한 번으로 결실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언젠가는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전도축제는
기존에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을 훈련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한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전도축제의 사례를 보면
교회에 처음 나온 분들 중에는 곧 바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사실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체로는 전도축제를 하는 날만 참석했다가
그 다음 주에는 볼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결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주보의 글도 바로 그런 경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주보의 글에 나오는 사람은
처음부터 자원해서 교회에 출석하고 등록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거듭남의 증거가 없어서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거듭남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보의 글에 나오는 사람도 결국 나중에는
거듭나서 자기 스스로가 완전히 새롭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거듭났다는 증거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교는 예로부터 흔히 사랑의 종교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가장 큰 증거 역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12을 보십시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한일서 4:12).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또 한 가지 증거는
바로 성령의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령의 함께 하심과 인도하심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가장 큰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성령이 관심을 가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럼 성령의 관심은 어떤 것입니까?
우선 성령의 최우선 관심사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16:14을 보십시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한복음서 16:14).
여기 “그”는 성령이고 “나”는 예수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도 성령은 예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성령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함께 하신다고 해서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까지 똑같지는 않습니다.
똑같은 성령의 역사라고 해도
우리의 성품이나 성격에 따라서,
또 우리 각자의 형편과 처지와 하는 일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도
결국 성령은 우리 각자의 삶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성령은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과 윤리의식과 자기의 의지력보다 더 큰 힘이
자기의 삶을 이끌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의 아주 큰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과 성령의 함께 하심이라는 두 가지 증거는
서로 함께 역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또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면
다른 사람은 우리를 신뢰하고 우리를 통해서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그만큼 사랑의 교제가 깊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또 한 가지 증거는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8:29을 보십시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한복음서 8:29).
예수께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열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마가복음서 1:11).
하나님께서 예수를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5:9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린도후서 5:9).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까?
누가복음서 9:23을 보십시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누가복음서 9:23).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삶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린도후서 5:19).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화목의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랑, 성령의 동행과 인도,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열망이라는
적어도 이 세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증거가 함께 어우러지게 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쁨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순교자는 “기쁨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늘 슬픈 모습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충만히 거하시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럼 과연 어떤 삶이 기쁨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평안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26:3을 보십시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이사야서 26:3).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증거가 있으면,
사랑, 성령의 인도하심,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열망이 있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고
실패와 고난을 당할 때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11에서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또 기쁨의 삶은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삶으로만 그치지 않고
이웃에게 관심을 돌리고 그들을 돌보고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자신이 기쁨의 삶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의 삶은 나만의 기쁨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이 전해지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빛과 소금이 되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론 억지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한두 번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또 그만큼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인간관계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는
기왕이면 예의를 갖추고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원만한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는
굳이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예의와 친절이 저절로 나타납니다.
또 혹시 실수로 예의와 친절을 베풀지 못해도 용납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예의와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예의를 어기고 불친절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기본적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예의에 어긋나고 친절하지 못한 일이
쉽게 용납되거나 이해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기쁨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기쁨의 삶을 위한 우리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와 원만한 관계,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기쁘게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자연히 그리스도를 정성으로 섬기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자연히 열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증거가 있는지,
그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성령의 함께 하심,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열망을
믿음의 증거로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자신이 언제 어디서나 평안을 누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웃에 대해서도 빛과 소금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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