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어
NEWS
http://www.songcheon.net/sc_home/xe/files/attach/images/37583/5c9301f7269e30f1b60e6bf0345865c7.png
목회자칼럼
믿음의 변화를 위하여

요한복음서 14:25-26

농사일은 하루 일을 더한다고 금방 좋아지고
하루 일 안한다고 금방 안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권사님 집사님들에게 몇 차례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씀대로 하자면
하루 이틀 정도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 집사님 권사님들 중에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분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굳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하루 일을 더하고 덜하는 것이 지금 당장은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아도
결국 우리가 소망하는 풍성한 수확은
이런 하루하루의 정성이 쌓일 때 거둘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농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들이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무슨 일이든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숙한 신앙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열심과 정성이 없으면 믿음의 결실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풍성한 믿음의 열매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수고와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까?
이 역시 잘 모르기는 하지만 농사에 비유를 해 봅니다.
무슨 작물을 어떻게 경작하든지 간에 모든 농사는
기본적으로 잡초를 없애고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잡초를 없애지 않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작물이 있습니까?
거름을 주지 않고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 농사방법이 있습니까?
무슨 농사를 어떻게 짓든지 간에
잡초를 없애지 않고 거름을 주는 일 없이는
결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열매를 거두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잡초를 없애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럼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잡초는 무엇입니까?
크게 보면 세 가지 정도의 잡초가 있습니다.

우선 디모데전서 6:10을 함께 찾아볼까요?“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10).
여기서는 우리의 믿음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방해하는 잡초를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바로 물질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잡초라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는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나무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지가 병이 들었을 때는 그 가지만 잘라내면
나무는 다시 살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뿌리가 썩으면 어떻습니까?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나무 전체가 함께 썩게 됩니다.

그런데 디모데전서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잘 보시고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물질 자체가 아니라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물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 왜 잘못된 태도일까요?
물질을 사랑하게 되면
물질을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물질이 아무리 중요해도 하나님보다 중요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 사람보다도 중요할 수는 없는 것이 물질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물질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다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믿음조차도
물질을 위한 수단이 되고 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분명히 물질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수단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오히려 하나님이 물질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는 것입니다.
물질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게 되고
물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물신주의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 모두가 물질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물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물질의 잡초를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신앙의 열매를 위해서
또 하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교만입니다.
로마서 11:20을 한 번 찾아볼까요?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로마서 11:20).
이 말씀은 교만이 왜 믿음의 잡초인지를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개의 구절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구절은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이고,
두 번째 구절은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입니다.
그런데 이 두 구절을 서로 짝을 지어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선 뒷부분부터 생각해 보면
믿음으로 선 사람은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기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믿음으로 선 사람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높은 마음을 품은 자이고 그들은 꺾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높은 마음을 품은 자라는 것은 말 그대로 교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믿음으로 선 사람이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온전하게 설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꺾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교만은 하나님조차 부인하고 거역하게 만들기 때문에
믿음의 결실을 방해하는 잡초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로 요한복음서 5:44에서도 우리는
또 하나 믿음의 잡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한복음서 5:44).
여기서는 주님을 믿지 못하고 방해하는 신앙의 잡초를
서로의 영광은 취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은 구하지 않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을 방해하는 잡초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는 멀리하고
세상의 영광, 세상의 권세, 세상의 명예만 구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서 6:33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서 6:33).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
다른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무시하고 세상의 영광과 권세만 찾으면
결국에는 잡초만 무성한 모습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물질의 잡초, 교만의 잡초, 세상의 영광과 권세에 대한 잡초가
우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크게 두 번째로 우리의 신앙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름진 거름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럼 믿음의 성장에 필요한 거름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은 로마서 14:8을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8).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으라고,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보면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자나 깨나 주님만 생각하라는 뜻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믿음이 돈독한 사람도
어떻게 사나 죽으나, 자나 깨나 주님만 생각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이렇게 하기는 어렵지요.
또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참 뜻도
이렇게 사나 죽으나, 앉으나 서나 주님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24시간 내내, 365일 내내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어도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닥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선순위에 따라 일의 순서를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어쩌면 매순간이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무슨 일을 선택하고 결정할 때
나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믿음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거름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말씀은 거름이라고 하기보다
영혼의 양식이라고 할 때가 훨씬 더 많지요.
우리 인간의 육신은 참으로 많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질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매일 매일 먹는 음식을 통해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심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이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면
우리의 심령도 너무나 많은 죄악으로부터
그야말로 끊임없는 시달림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이런 죄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영혼의 양식이 되는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건강한 믿음을 위해서
이 말씀과 더불어 또 하나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지요.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영혼의 양식이라면 기도는 뭐라고 합니까?
영혼의 호흡!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는 양식과 음식도 중요하지만
호흡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음식은 며칠을 먹지 않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흡은 어떻습니까?
며칠이 아니라 단 몇 분만 멈추어도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바로 영혼의 호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의 믿음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와 관련해서
종종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도의 응답에 대한 의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곧 바로 응답받지 못하면
왜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대해서
응답해 주시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하자면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을 하십니다.
다만 응답의 시기와 방법에 차이가 있더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구한 것에 대해서 곧 바로 응답하시는가 하면
우리가 구한 것 이상으로 넘치게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구하기는 했지만 아직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응답의 시기를 늦추시기도 합니다.
또 우리는 아주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서 구했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아주 잘못된 것이어서
아예 구한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응답을 하시기도 합니다.
좌우간 우리의 믿음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 역시 양식과 호흡이라고 할 만큼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전도 역시 믿음의 결실을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거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와 관련해서 우리가 종종하는 말이
나의 행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도하기가 두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이런 말이 전도를 소홀히 하는 구실이나 핑계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전도는 기본적으로 내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특히 전도하는 것을 우리는 복음을 증거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증거는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증거하는 사람의 행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요.
복음을 증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왕이면 나의 행실이 복음을 믿는 사람에 합당하게 본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제와 봉사 역시
믿음의 결실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제는 다른 말로 하면 모이기에 힘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아주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봉사 역시 우리가 건강한 믿음, 결실을 거두는 신앙을 위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15:58을 보면
사도 바울은 봉사하는 사람은 이미 봉사할 때부터
믿음이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는 수고와 봉사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고, 다른 말로 하면 풍성한 결실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우리의 믿음이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
없애야 할 잡초가 무엇이고
공급해 주어야 할 거름과 영양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질과 교만과 세상의 권세와 같은 잡초를 없애고
하나님 중심의 삶, 말씀과 기도, 전도와 교제와 봉사 같은
영양분을 흡족히 공급하여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9 완전한 모습을 향하여 관리자 2019.08.07 9
268 주기도문 단상 관리자 2019.07.28 7
267 [목회서신]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관리자 2017.11.14 152
266 [기독교 교양] 시간 관리를 위한 실천 지침 황현석 2014.03.28 794
265 [기독교 교양] 시간을 대하는 자세 황현석 2014.03.21 561
» [기독교 교양] 믿음의 변화를 위하여 황현석 2014.03.07 766
263 [기독교 교양] 거듭남의 증거 황현석 2014.02.21 675
262 [기독교 교양] 말씀을 전하고 나누는 일 황현석 2014.02.14 485
261 [기독교 교양] 복종의 미덕 황현석 2014.02.07 774
260 [기독교 교양] 그리스도인의 섬김 황현석 2014.01.24 635
259 [기독교 교양] 섬김의 삶 황현석 2014.01.10 654
258 [기독교 교양] 그리스도인의 물질관 황현석 2014.01.04 972
257 [기독교 교양] 그리스도인의 노동윤리 황현석 2013.12.20 662
256 [기독교 교양] 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황현석 2013.12.06 706
255 [기독교 교양] 일상적인 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황현석 2013.11.29 700
254 [기독교 교양] 그리스도인의 직업관 황현석 2013.11.22 845
253 [기독교 교양] 근심과 걱정에 대한 자세 황현석 2013.11.08 896
252 [기독교 교양] 죄와 잘못에 대한 자세 황현석 2013.11.01 753
251 [기독교 교양] 참된 믿음의 교제를 위하여 [1] 황현석 2013.10.25 719
250 [기독교 교양]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황현석 2013.10.11 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