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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6/25]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황현석 2017.06.27 12:45 조회 수 : 12

설교제목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본문말씀 창세기 21:8-21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7-06-25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창세기 21:8~21
우리의 삶에는 속수무책이라는 말처럼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어려움과 낭패를 겪을 때가 있습니다.
어려움과 낭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더 힘들어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예전에 제주도에서 목회할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 그 교회는
상가건물의 한 층을 임대해서 교회당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임하고 2년 정도 되었을 때
바로 밑층에 단란주점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당과 단란주점이 같은 건물을 쓰는
정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인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도 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물론 교회로서는 그 일을 계기로 교회당을 새롭게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동안은 교회당과 단란주점과 같은 건물을 써야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속수무책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말씀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하갈도 바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이들의 어려움은 이삭이 태어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자녀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받았을 때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75살, 65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10년이 지나도록 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사라도 나이가 85살, 75살이 되었습니다.
사라로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자신의 여종인 하갈과 남편 아브라함 사이에서
아들을 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서자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나야 했고
실제로 이스마엘이 태어난 후 15년이 지나서 사라는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이름부터가 웃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 그대로 이삭은 어머니 사라에게
정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기쁜 웃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의 출생이 모든 사람에게 웃음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이삭보다 15년 먼저 태어났던 이스마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마엘로서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라도
이삭이 태어난 것이 결코 기쁜 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말씀에서도 8-9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잘 자라서 젖을 떼는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쁜 날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고
이 모습을 본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당장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갈은 이스마엘을 낳았어도 여전히 여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비록 서자이기는 하지만 아브라함의 아들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뿐이라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 사라에게 이런 요구를 받은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그 다음 날 사라가 요구한 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우리가 볼 때 너무나 무책임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보내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아브라함도 사라와 같은 마음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겠습니까?
11절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했다고 했습니다.
근심했다는 말을 다른 번역에서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내는 아브라함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2절을 보면 먼저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창세기 21: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에게도 마찬가지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약속이
이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지난날 자기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것처럼
하갈과 이스마엘도 떠나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보낸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가지고 했던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갈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이 무책임하게 보인다면 하갈은 너무나 무력해 보입니다.
자기와 이스마엘을 내쫓으려고 하는 사라를
말리고 달래야 할 사람은 아브라함인데
하갈이 볼 때 아브라함은 사라가 요구하는 대로만 하고 있으니까
하갈도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루아침에 광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이들을 내보내면서 먹고 마실 것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먹고 마실 것은 다 떨어졌고
이스마엘과 하갈은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갈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저앉아서 통곡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얼마나 무력한 모습입니까?
 
그런데 하갈이 광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가졌을 때도
사라의 학대 때문에 광야로 도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그 때 하갈이 광야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갈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났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창세기 16:10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세기 16:10).
하나님은 광야로 도망한 하갈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똑같이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사라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하갈은 이렇게 자기에게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하나님을 자기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살피셨다고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자기 발로 도망 나온 곳으로,
자기를 학대하는 사라가 있는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분명히 하갈이 돌아간 곳은 여전히 사라의 학대가 기다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사라의 학대가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하나님께 받은 약속이 생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을 보면 하갈은 또 다시 광야로 나왔습니다.
특히 15-16절을 보면
다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차마 지켜 볼 수가 없어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마치 시신을 내려놓듯이 그렇게 내려놓고
아들 있는 그곳을 바라보면서 울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하갈의 울음은 모든 것을 포기한 울음이고
자기의 처지가 서러워서 우는 울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갈의 울음을
지난날 광야에서 받았던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하갈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고
온갖 구박과 설움을 다 견뎌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광야로 쫓겨났으니까
하갈의 울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우는 울음이었습니다.
똑같은 울음이라도 자기를 포기하고 우는 울음이나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서 우는 울음은 말 그대로 울음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우는 울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갈의 울음은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는 울음이나
자기의 처지가 서러워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하고도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하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
가장 책임 있는 순종을 했고 가장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하갈은
가장 중요한 자기들의 중심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나 보내는 것에 대해서 근심하고 마음이 괴로울 정도로
사랑하는 이스마엘과 하갈을 하나님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하갈도 지금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자기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실 사라와 하갈 사이의 갈등이나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의 문제는
아브라함 자신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복잡하게 얽혀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을 보면 이렇게 복잡한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이삭은 이삭대로 약속받은 축복을 누리게 되었고
이스마엘은 이스마엘대로 자신에게 약속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아브라함과 하갈은 자기들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기도하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들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일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하갈은 분명히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이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우리의 삶에도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중심을 내려놓고 맡기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과 하갈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
가장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의 중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과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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