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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본문말씀 창세기 24:34-40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7-07-09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창24:34-40
 
너무 작은 글씨라서 읽기가 어렵지만
주보에 소개한 교세라 정공은 각종 기계 공구를 만드는 회사인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보에 소개한 글은 2008년 자료이지만
이 회사는 지금도 아주 탄탄한 기업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도 주보 글에 소개한 것처럼 몇 번의 큰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 고비 때마다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내렸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직원을 감축해야 했던 일,
또 회사가 더욱 어려워졌는데도 임원들과 제자훈련을 시작했던 일,
일본에서 자회사를 설립하자고 제안이 들어왔을 때
자기 혼자서는 하지 않겠다고, 직원들과 함께 하면 하겠다고
거꾸로 제안을 했던 일,
정말 하나같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과 결단의 결과 이 기업은 모든 고비를 잘 이겨내고
지금과 같은 건실한 기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무슨 일이든지 선택과 결단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택과 결단이라는 말에는 “불확실”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사실 누가 보더라도 확실한 일이라면
굳이 선택을 하고 결단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과 결단은 거의 대부분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내려야 합니다.
또 이런 선택과 결단은 기업을 경영하는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이런 선택과 결단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중요한 일일수록
바르게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불확실한 중에도 바른 결단을 내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시는 분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불확실한 중에도 올바른 결단을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확실치 않은 가운데서도 바른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신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신실한 믿음으로
바른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이스라엘도 역사를 돌아보면
아주 화려한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아주 초라한 시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화려하다고 해서
하나님도 반드시 화려한 역사를 펼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반대로 우리가 보기에 초라하다고 해서
하나님도 초라한 역사를 펼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눈에 아무리 화려하게 보여도
올바른 선택과 결단을 내리는 신실한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구원의 역사를 이루지 않으셨습니다.
또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초라한 역사라도
신실한 믿음으로 바른 선택과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는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따로 정착했던 곳입니다.
롯이 볼 때 이 소돔과 고모라는 온 땅에 물이 넉넉한 곳이었습니다.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롯이 보기에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의 동산, 에덴동산 같고 풍요의 땅 애굽 같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자면 정말 소돔과 고모라만큼 좋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이 소돔과 고모라가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렇게 살기 좋은 소돔과 고모라 땅인데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는
의인 열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적으로 보자면 얼마나 비참한 시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정말 아무런 소망을 찾을 수 없는
캄캄한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이 어둠과 절망 가운데
출애굽이라는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신실한 믿음으로
올바른 선택과 결단을 했던 모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모세는 살인자요 도망자였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자기 동족들처럼
정말 미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이런 저런 핑계를 앞세워서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세는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겸손히 순종하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이런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오늘말씀에는 아브라함의 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종의 주인인 아브라함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원래 우르라는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씩 말씀드린 것처럼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에 있는 지역인데
여기에서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을 보면
아브라함 당시에도 우르 지역은 아주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될 정도로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그렇게 좋은 환경과 찬란한 문화를 다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 어떻게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아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자기가 누리던 좋은 환경과 찬란한 문화를 모두 포기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신실한 믿음으로 올바른 결단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주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삭이 태어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100살이고 사라는 90살이 되었을 때입니다.
인간적으로 보자면 이 나이에 새로운 자녀를 얻는다는 것은
생명공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삭의 출생은 정말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는
다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단순히 늦둥이라서 귀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땅의 티끌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같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삭은 바로 이 약속을 이어갈 자식입니다.
그러니 이런 이삭의 출생이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역시 아브라함이 신실한 믿음으로 올바른 결단을 했기에
누릴 수 있는 은총이었습니다.
 
그럼 오늘 말씀은 무슨 내용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이삭이 이제 건강하게 장성해서
배우자를 찾아 가정을 이룰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아주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사람은 신분으로 보자면
이름도 알 수 없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삭의 배우자를 구하는 일을 이 종에게 맡겼습니다.
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아브라함의 가문이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그 종에게 달려 있습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보자면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의 역할을 아주 잘 감당을 해서
이삭의 아내로 리브가를 데려오게 됩니다.
비록 이름도 알 수 없는 종이기는 하지만
그 역시 신실한 믿음으로 바른 결단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만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본문 앞에 나오는 27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이ᅟᅵᆫ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고”(창세기 24:27).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눈여겨 보고 나서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머리 숙여 경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인의 가문이 큰 민족을 이루는 막중한 일을 위해서
가장 먼저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렸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고는 그 어떤 하나님의 역사도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름 없는 종이지만 그는 이렇게 기도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맥스 루카도라는 분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의 말은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여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이렇게 보면 신실한 믿음의 사람,
바른 결단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본문말씀을 포함해서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의 가족을 만나는 모습을 보십시오.
아무리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어도
그는 분명 이름 없는 종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그가 만나는 사람은 주인의 동생으로서
주인과 똑같이 섬겨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주눅이 들기 쉬운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고
담대하게 자기의 임무를 알리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그는 자기가 감당할 사역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종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아주 담대하게 자기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신실한 믿음의 사람,
올바른 선택과 결단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 역시 형편과 처지에 관계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믿음과 삶에도 크고 작은 선택과 결단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늘 바른 선택과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가운데
신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 자기의 형편과 처지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바른 결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언제나 먼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의 힘을 실감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역시 언제 어디서,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 주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른 결단을 내리는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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