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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본문말씀 사도행전 2:1-13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8-05-20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도행전 2:1-13
 
유월절과 오순절은 오늘 우리에게도 친숙한 절기입니다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이 3대 절기입니다.
그 가운데 오순절은 50일째의 절기라는 뜻으로
유월절 이후 50일이 되는 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로 보면
유월절은 부활절과 겹치고 오순절은 성령강림절과 일치합니다.
실제로 오늘말씀에서 보는 대로
오순절에 예수의 제자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15을 보면 그들은 대략 120명 정도였습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우선 시기적으로 그들은 자기들이 스승으로 모시고 따랐던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면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서 다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를 직접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면
초대교회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날이 오순절입니다.
 
오늘말씀이
바로 오순절에 있었던 아주 특별한 현상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2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사도행전 2:2).
이 장면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1장을 보면 그들이 모인 곳은 다락방입니다.
물론 요즘은 방에서도 유리로 된 창문을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방에 유리로 된 창문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는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는 하늘은
실제 하늘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말에 담긴 특별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늘은 가장 소중한 생명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이것이 무슨 현상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업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이
바람 같은 것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 우리의 눈으로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 당시의 사람들에게 바람은
그 무엇보다도 신비로운 현상이었습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평소에는 부드럽게 불다가도
때로는 나무를 쓰러뜨리고 뿌리가 뽑힐 정도로 강하게 불기도 합니다.
또 바람에는 시원한 바람이 있는가 하면 따뜻한 바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말씀에서 이야기하는 바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3절에서는 이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겪은 일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사도행전 2:3).
여기서 이야기하는 불도 만일 실제 불이라면
이 다락방에는 화재가 났을 것입니다.
물론 불은 있는 것을 태워 없애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은 생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쉬운 예로 태양을 생각해 보십시오.
태양은 큰 불덩어리입니다.
그런데 이 태양이 없으면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생명체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는 불도 실제 불이 아니라
2절의 바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가 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2:4).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라는 말입니다.
분명히 세상에는 거룩한 영과 달리 거룩하지 않은 악한 영도 있습니다.
악한 영은 겉으로 볼 때는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생명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죽음의 영입니다.
하지만 오늘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은 분명히 성령을 받았다고 했으니까
그들은 생명의 영을 받았습니다.
생명의 영은 말 그대로 살리는 영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말을 주로 생명체에 사용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명체가 아닌 것에 대해서도
생명과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도
생명의 시대냐, 죽음의 시대냐를 이야기할 수 있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와 문명에 대해서도
생명의 문화와 문명, 죽음의 문화와 문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풍족하고 살기 좋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또 편리한 문화와 문명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풍족하고 편리한 것만 좋아하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물질을
다른 무엇보다 최고로 여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보다 물질이 먼저이고 심지어는 하나님보다 물질이 앞서는 경우도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또 이런 물질에 눈이 멀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너무나 흔하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와 문화와 문명은 아무리 풍족하고 편리해도
생명의 시대, 생명의 문화, 생명의 문명이 아니라
죽음의 시대, 죽음의 문화, 죽음의 문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도 생명의 신앙, 죽음의 신앙이라는 말을 합니다.
똑같은 신앙이라도
살아있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죽은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신앙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종교개혁 당시의 중세교회였습니다.
겉으로는 대단한 위세를 자랑했지만
그 속 내용은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성령은 생명의 영이고 살리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는 말은
생명을 살리는 성령을 거역하고 거스르는 죽음의 권세에 대해서
굴복하지도 않고 타협하지도 않고
죽음의 권세와 맞서서 물리치고자 하고
실제로 물리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오늘말씀에 나오는 사람들 역시
바로 이렇게 죽음의 권세와 맞서서 승리하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4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그들은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방언이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는 생각부터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방언에는 그 방언에 대한 통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말씀에 나오는 방언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여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갈릴리의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외국어를 배울 기회도 없었고 배울 필요도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5절부터 나오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들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로 방언을 하니까
듣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찌된 일이냐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봐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실제로 우리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이 바로 이 방언 사건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외국어로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이 이날 이후로
계속 자기들이 배우지 않은 외국어로 복음을 전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제자들이 외국어로 말을 했던 이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과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강림 사건은
서로 대조가 되는 사건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벨탑을 쌓기 전까지 우리 인간은 원래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탑을 쌓으면서
자기 이름을 드러 내고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교만 때문에
언어가 갈라지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창세기 11장을 보면 그들은 벽돌을 만들고
진흙 대신 역청을 사용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역청은
아마 오늘로 하면 아스팔트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흙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건축 재료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그만큼 뛰어난 기술과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자기들의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게 되니까
결국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배척하고
인간의 능력만 의지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발달한 기술과 문명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인간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갈라지게 하시고
그들을 흩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바벨탑 사건은
아직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생기기 전에 일어난 일이고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구별이 생기기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인간과 관계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벨탑 사건과 대조가 되는
성령강림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과 마찬가지로 성령강림 사건 역시
교회나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인간과 관계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강림 사건과 더불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 역시 처음부터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이런 목적대로 움직이는 교회였습니다.
그야말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구약시대로 이야기 하면 초대교회는 레위 지파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신분과 지위가 같다는 것이 아니라 하는 역할이 같았습니다.
레위 지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지파 별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하지만 열두 지파 모두에게 땅이 분배되지 않고
레위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에게만 분배되었습니다.
그러면 레위 지파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는 열한 지파에 섞여 살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고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답게 살도록 가르치고 지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레위 지파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던 일을
세상에 대해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이런저런 부정적인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사람들이 교회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런 부정적인 소리를 듣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 누룩이나 등불과 같은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바로 우리부터 세상에 대해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누룩이 되고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 모두 저마다 처한 삶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는 빛과 소금과 누룩과 등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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