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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10/28] 믿음으로 말미암아

황현석 2018.10.30 12:47 조회 수 : 28

설교제목 믿음으로 말미암아 
본문말씀 로마서 3:21-28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8-10-28 
믿음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3:21-28
 
10월 31일은 우리 개신교가 시작된 종교개혁기념일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501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자기가 시무하고 있던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정문에
당시 교회의 잘못된 모습을 비판하는 95개의 조항을 게시했고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는
바로 이것을 본격적인 종교개혁운동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에서는 10월 31일이 포함되어 있는 10월 마지막주일을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올해는 501주년이고 작년이 500주년이었습니다.
우리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것은 해마다 당연하게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500주년은 더욱 특별하게 기념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던 작년은
제가 문외한인지는 몰라도
개신교에서 특별하게 기념한 것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물론이고
종교개혁이 일어난 독일과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역시
종교개혁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이 예년보다 더 많아진 것 말고는
특별하게 기념한 일이 없었다는 것 같습니다.
물론 500년 동안을 기념했으니까
더 이상 새롭게 기념할 일을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유럽의 개신교는 전반적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퇴조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토마스라는 선교사를 보냈던 영국의 하노버교회는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았다가
몇 년 전에 한국인 목사가 부임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니까 유럽의 교회는 관광객이 다녀가는 유적 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또 국내적으로도 우리 개신교는 어느새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혁은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개혁의 주체와 개혁의 대상은
똑같이 개혁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그 뜻은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질병으로 치면 개혁의 주체는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개혁의 대상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가 종교개혁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았다면
잘못된 것을 진단하고 고치기 우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는 스스로가 질병을 앓는 환자처럼
스스로가 잘못된 모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개신교가 이렇게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개혁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종교개혁을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는 한자성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말입니다.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주 당연한 말입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에서도 28절을 보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고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우리의 선한 행실은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데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다고만 하면 의롭게 되니까
선한 행실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은
오늘 로마서 외에도 여러 곳에 나옵니다.
가장 먼저는 창세기에서부터 나옵니다.
창세기 15:6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또 하박국 예언자 역시 하나님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박국이 예언자로 활동할 때
이스라엘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안으로는 포악한 왕이 백성들을 학대하고 있었고
밖으로는 이민족이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침략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주신 응답이 바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 수 있고 또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으로 부각된 것은
바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나 성경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성경은 아무나 접할 수 없습니다.
또 설사 성경을 보게 되어도 보통 사람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성경은
보통 사람은 배우지 않는 라틴어로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직자들만 읽을 수 있었는데
실제로는 성직자들도 성경을 거의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성경말씀보다
성경을 토대로 하여 교회가 제정한 여러 가지 규칙들과 교리들이
훨씬 더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구원받은 백성이 되고 의롭게 되기 위해서도
성경말씀이 아니라 교회의 규칙과 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교회가 정한 교리와 규칙은
인간의 행실을 많이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 당시의 그리스도교는 자연히
인간의 행실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야말로 공덕을 많이 쌓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인간의 공덕이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공덕을 별로 쌓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이나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열심히 공덕을 쌓으면
그 영혼도 얼마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행실과 공덕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다 보니까
결국에는 면죄부까지 팔게 되었습니다.
면죄부는 말 그대로 죄를 면하게 하는 표로서
하나님께 지은 죄는 교회에서 파는 표를 사서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교회가 아무리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해도
죄를 마음대로 사고 팔 수는 없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죄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의 진리 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교회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파는 면죄부를 사야 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적은 금액의 면죄부를 사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면죄부의 금액도 높게 책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교회에서 파는 면죄부를 사기만 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교회의 면죄부를 사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렇게 마르틴 루터 당시의 교회는
하나님보다 자기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엉터리 같은 일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엉터리가 면죄부뿐만 아니라는 것이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들이 어느 한 두 교회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거의 모든 교회가 이런 일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평소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교회의 문제들을
95개 조항으로 기록해서
자기가 섬기던 교회 정문에 게시를 했던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을 회개하고 믿음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루터가 특별히 주목하게 된 말씀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루터는 이 말씀을 따라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교회가 제정한 교리들과 규칙들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정한 교리나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백성이 되고 의롭게 되는 것 역시
행실이나 공덕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루터는 믿음의 진리를 제대로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몇 백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또 다시 반대로 오해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행실이나 공덕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했으니
우리의 행실은 아무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바울과 루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실천이 없는 종교가 되었다고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바울과 루터가 실천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행실과 공덕이 필요 없다고 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실천이 필요 없다면 무엇 때문에 옛사람을 죽이라고 했습니까?
행실과 공덕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니 바울과 루터는
결코 행실과 공덕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바울과 루터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 없이
우리 인간 스스로가 자기의 행실과 공덕으로
구원받고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22절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미친다고 했습니다.
24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로다 하심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26절에서는 예수께서 우리 인간을 의롭다 하신다고 했습니다.
28절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예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없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고 예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의롭게 된 다음에도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행실이나 공덕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으니까
더욱 선한 행실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선한 행실로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롭게 된 사람은 선한 행실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 우리 개신교가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만 것,
질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되고 만 것은
바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만 강조하고
그 후에 있어야 할 선한 행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시도한 종교개혁의 핵심은
“껍데기 신앙을 타파하고
대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껍데기 신앙은 말 그대로 신앙의 외적 형식만 준수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은 이런 껍데기 신앙과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합니다.
형식주의 신앙은“내가 이런 저런 것을 하였노라”고
자기를 자랑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신앙입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은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면
보잘것없는 죄인임을 깨달아 겸손히 사는 믿음입니다.
형식주의 신앙은 내가
열심을 가지면 다 된 줄 알고 만족하는 신앙입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나의 속 욕심이 만나서
서로 밀고 당기는 속에서 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내 마음대로 하려는 생각을 줄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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