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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본문말씀 룻기 1:15-18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8-11-04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기 1:15-18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왕이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믿음이 좋다는 것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우리는 좋은 믿음을 이야기할 때
열심이 얼마나 있느냐를 살필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열심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믿음이 좋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주보에 소개한 예화에 나오는 사람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음악당 관리인은
성공적인 음악회를 위해서 자기가 할 일을 아주 열심히 감당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열심은 음악회를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믿음을 위해서는 열심이 필요하지만
열심만 있으면 무조건 좋은 믿음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열심은 믿음도 잘못된 것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믿음을 위해서는 열심 외에 다른 것도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좋은 믿음을 이야기할 때
“신실하다”는 말도 자주 사용합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말 그대로 “믿음직스럽고 진실하다”, 신뢰와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신뢰와 진실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아주 평범한 덕목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신뢰와 진실이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마 우리의 현실을 조금만 돌아보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불신의 골과 거짓의 벽이 너무나 깊고 높기 때문에
신뢰와 진실을 결코 당연하고 평범하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믿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좋은 믿음을 위해서는
신뢰와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말입니까?
또 평상시에는 우리 그리스도인 누구나
신실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막막하고 답답한 형편을 하소연 할 때는
누구나 신실한 신앙인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모습만 가지고 신실한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정말 신실한 신앙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나오는 룻에게서 우리는 신실한 믿음의 참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룻의 믿음을 신실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룻은 오늘로 말하자면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 유대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물론 시어머니 나오미도 있었고 손윗 동서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모두 남편을 잃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룻의 시집은 여인들밖에 없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 땅에 가뭄이 그쳤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시어머니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며느리에게는 새로운 삶을 찾아서
각자의 길을 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젊은 두 며느리에게 새로운 삶을 살도록 배려를 해 준 것입니다.
또 당시로서는 시어머니의 권유나 배려가 없어도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실제로 룻의 손윗동서는
시어머니의 말대로 새로운 삶을 찾아서 떠났습니다.
 
하지만 룻은 어떻게 했습니까?
룻도 남편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알았습니다.
또 시어머니를 따르는 것이
앞날을 보장받지 못하는 고생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알면서도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자기만 좋은 길을 찾지 않고
어머니의 불행한 삶에 자기도 함께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어머니 가시는 곳이면 자기도 가고
어머니 머무시는 곳이면 자기도 머물겠다고 했습니다.
고통스럽고 외로운 시어머니의 삶에
끝까지 사랑과 섬김으로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진실한 모습입니까?
물론 룻의 신실한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6절 마지막 부분에 뭐라고 했습니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기 1:16).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사랑과 섬김은
어머니의 하나님까지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분명히 룻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룻은 자기 혼자 새로운 삶을 사는 대신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시어머니의 불행한 삶에 함께 하면서
그 어머니의 신앙까지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더구나 룻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이방인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하나님조차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고 섬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신실한 모습입니까?
이렇게 룻의 믿음과 삶은 신실했기에
이방 여인이면서도 다윗의 조상으로,
나아가서 예수의 조상으로 이름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서일과를 보면
복음서는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열명의 나병환자에 대한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만나서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누가복음 17:13).
이렇게 소리치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는 아주 큰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누가복음 17:14).
이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당시에는 나병처럼 몹쓸 병을 고친 사람은
먼저 제사장에게 보여서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말씀은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도
그들이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는
아직 그들의 몸은 나병 상처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없었다면 상처가 낫는 것을 보기 전에는
제사장에게 가는 발걸음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름과 상처투성이인 모습 그대로
곧바로 제사장에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그리고 그들의 믿음대로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나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아무리 크고 대단하다고 해도
신실한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나병이 낫고 난 다음 그들이 보여준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했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누가복음서 17:17-18).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 출신의 나병환자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 사마리아 나병환자만이 다시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홉 사람과 한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신실한 모습입니까?
당연히 한 사람, 사마리아 출신의 나병환자입니다.
물론 다른 아홉 사람의 믿음 역시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어려움이 있을 때만 보일 뿐입니다.
그들이 돌아오지 않은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의 차원이 자기들의 필요를 채우고
자기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으로 그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아무리 크고 대단하다고 해도
이런 믿음은 자기중심적인 믿음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믿음을 어떻게 신실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의 믿음은 아무리 크고 대단하다고 해도
예수께서 보실 때는 결코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불성실한 모습,
불완전하고 미숙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출신의 나병환자는 어떻습니까?
그의 믿음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께 다시 돌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필요를 채워주시고 어려움을 해결해주신 주님을 잊지 않고
주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결코 은혜와 사랑만 구한 것이 아니라
그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홉 사람과 비교해 보십시오.
이 사람의 믿음은 결코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필요를 채우고 어려움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감사와 찬양을 잊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그만큼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이 사마리아 출신의 나병환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누가복음 17:19).
육신이 낫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그의 심령과 삶 전체가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 역시
어려움이 있을 때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아홉 사람과 같이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불성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또 그들처럼 미숙하고 불완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룻처럼 자신만의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신실한 믿음과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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