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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11/11] 참된 안식을 위하여

황현석 2018.11.14 10:39 조회 수 : 28

설교제목 참된 안식을 위하여 
본문말씀 룻기 3:1-13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8-11-11 
참된 안식을 위하여
 
룻기 3:1-13
 
오늘 우리는 지난날 그 어느 때보다도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편리한 시대라고 해서
안식이나 평안도 더 많이 누린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안식과 평안은
지난날보다 더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우리는 물질과 문명으로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노심초사하고 안절부절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에 비해서 예전에는 여기 계신 분들부터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고 문명도 우리만큼 누리지 못해도
마음은 편했던 시절을
직접 보내기도 하셨고 또 간접적으로 듣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안식과 평안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순서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아는 대로 안식일은 마지막 일곱째 날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안식일은 첫째 날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여섯째 날 창조가 되었고
바로 그 다음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제일 먼저 주신 것이 안식입니다.
안식을 통해서 얻은 힘과 평안을 가지고
한 주간의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또 안식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냥 쉬는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안식은 삶의 근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식은 말 그대로 모든 삶의 뿌리가 되고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이렇게 모든 삶의 뿌리가 되고 기초가 되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말씀을 보면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가 나옵니다.
실제로 이들은 룻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들 역시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한 번 보십시오.
오늘말씀을 보면 나오미는 이기심을 극복한 사람,
그래서 자기의 필요보다 남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룻만 남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나오미도 남편을 잃었습니다.
사실 2:4을 보면 보아스는 룻을 가리켜서 소녀라고 했습니다.
또 오늘말씀 가운데 11절에서는 룻을 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에 대해서는 대체로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짐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나오미로서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보아스를 자기의 배우자로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말씀을 포함해서 룻기를 보면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나오미는 언제나 자기보다도 며느리인 룻의 처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나오미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자기가 아니라 며느리 룻이었습니다.
특히 1절을 보면 나오미는 룻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내 딸아”(룻기 3:1).
분명히 나오미와 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입니다.
그런데도 나오미는 룻을 며느리가 아니라 딸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나오미는 룻을 자상하게 대했습니다.
룻은 이렇게 시어머니에게 딸처럼 자상한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에
보아스와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
다윗의 가문,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가문에 들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나오미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오미와 달리 우리는 늘 나부터 생각하는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자기중심적으로 지낼 때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시대가 좋아지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아무리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같이 모두가 자기만 생각하니까
불안을 떨쳐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나 내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고
나오미처럼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예수께서 자기만 생각하셨다면
골고다 십자가 사건은 결코 있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예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환상 가운데 천국과 지옥을 봤는데
마침 두 곳 모두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쪽 사람들 모두
아주 긴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지옥의 식사시간을 보게 되었는데
모두가 자기만 먹으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긴 젓가락으로 서로 자기만 먹으려고 하니까
지옥에서는 식사시간도 사나운 칼싸움 시간이 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천국에서는 서로 상대방에게 먹여주니까
지옥과 똑같이 긴 젓가락이기는 하지만
식사시간이 아주 즐거운 모습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는
내 것을 먼저 챙겨야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지옥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천국은
바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때 이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은 내가 더 많이 가진다고 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오미처럼 다른 사람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룻은 어떤 사람입니까?
룻은 한마디로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5절은 따로 떼어서 보면
무슨 연애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관습에는
여자가 자기에게 친절을 베푼 남자를 배필로 맞이하고 싶을 때는
먼저 자기의 마음을 보여야 했습니다.
4-5절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보아스를 찾아가서 호감이 있다는 마음을 나타내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은 우리가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풍습을 잘 알지 못하는 이방여인입니다.
또 11절을 보면 보아스가 인정할 정도로 아주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시어머니가 시키는 일이라도
자기의 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5-6절을 보면 룻은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다 행하였습니다.
그만큼 룻은 순종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룻이 나오미에게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나오미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서 존중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불신 때문입니다.
믿지 못하니까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안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니까 순종은 고사하고 이해도 하지 못하고
이해를 할 수 없으니까 인간관계가 늘 피곤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북관계나 북미관계 같은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은 평화를 이야기했습니까?
그런데도 서로 믿지를 못하니까
구체적인 성과와 결실을 거두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가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룻과 같이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서로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될 때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보아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말씀을 보면 보아스는 한 마디로 책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책임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실천을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을 함께 하는 언행일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룻이 나오미의 말을 듣고 보아스의 잠자리를 찾아왔을 때
보아스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찾아온 여인을 품에 안든지 아니면 내쫓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어떻게 했습니까?
12-13절을 보면 룻이 찾아왔다고 곧바로 품에 안지도 않고
그렇다고 망신을 주어서 내쫓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를 찾아온 룻에게 가장 윤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또 15절에서도 보아스는 룻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룻기 3:15).
보아스는 한결같이 룻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덕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보아스는 책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는 안식을 누리기만 하고자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과연
참된 안식을 어떻게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있는 곳이 안식을 누리는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안식을 누리기는 원하면서도
책임은 다하지 않으려고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결코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참된 안식은 우리 모두 저마다의 책임을 다할 때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오미가 그랬던 것처럼
이기심을 극복하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룻이 그랬던 것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아스처럼
말과 행실이 함께 하는 언행일치로 책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역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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