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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12/02]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황현석 2018.12.06 06:38 조회 수 : 18

설교제목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본문말씀 누가복음21:25-36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8-12-02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누가복음 21:25-36

 

우리가 정해놓은 시간 가운데

하루는 밤 12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밤 12시까지입니다.

또 일주일은 달력을 보면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한 달은 28일뿐인 2월을 제외하고는

1일부터 30일까지나 31일까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일 년은 1월부터 12월까지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도 교회력이라고 해서 정해놓은 시간이 있습니다.

우선은 오늘처럼 일주일마다 되풀이되는 주일이 있습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달력에서도

주일은 한 주간에서 제일 앞에 나오는 날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한 주를 마치는 날로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일을 한 주를 새롭게 시작하는 날로 지킵니다.

 

또 크게 보면 일 년도 교회력에서는 여러 절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림절은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이고

이어지는 시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성탄절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기념하는 주현절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되새기는 사순절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신 기쁨을 함께 나누는

부활절이 이어지고

성령강림을 기념하고 되새기는 성령강림절이 있고

창조질서의 보전과 회복을 강조하는 창조절이 있습니다.

일 년 열두 달이 1월부터 시작해서 12월로 끝나는 것처럼

교회력도 대림절로 시작해서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을 거쳐

창조절로 마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력에서는 대림절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대림절은 성탄절 전 4주간 동안 계속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삶에서는 아직 올해가 12월 한 달 가까이 남아있지만

교회력으로는 오늘부터 이미 새해가 시작된 셈입니다.

 

또 대림절이 되면 우리는 성찬대에 네 개의 초를 장식하여서

매 주일마다 하나씩 차례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네 개의 초는 각각 소망과 평화, 기쁨과 사랑의 뜻을 담아서

성탄절 전까지 4주간 계속되는 대림절 동안에

하나씩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에 밝히는 촛불은 소망의 빛을 뜻합니다.

빛 되시는 예수께서 오시면

절망과 슬픔 가운데 있는 인간과 세상이

새로운 소망을 찾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소망의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둘째 주일에 밝히는 촛불은 평화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를 주시려고 빛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전혀 예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예수께서 머무실 방 한 칸도 내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가 온 세상에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의 촛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셋째 주일에 밝히는 촛불은 기쁨의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동방박사들은 별의 안내를 받아서

기쁨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박사들 역시 기쁜 마음으로 아기 예수께

가장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예수께 귀한 예물을 드리는 마음으로,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이 우리 가운데 차고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쁨의 촛불을 밝힙니다.

그리고 넷째 주일에 밝히는 촛불은 사랑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미움과 갈등의 세상을 향해서

사랑의 빛으로 오신 예수를 알리기 위해서 밝히는 촛불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사랑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셨고,

또 그 빛이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대림절 넷째 주일에는 예수께서 주시는 사랑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촛불을 켭니다.

 

이 가운데 오늘은 대림절 첫 주일로서

소망의 촛불을 밝히는 가운데

믿음의 시간으로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 가운데 대림절보다 훨씬 중요한 절기도 많습니다.

부활절은 우리 그리스도교만 있는 절기이니까

이 부활절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것도 참 좋을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절부터

한 해를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또 교회에서도 1월 첫 주일을 신년주일로 지키니까

1월 1일부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세상의 시간과 맞추어서

1월 첫 주일로 한 해를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또 교회는 성령강림과 함께 시작되었으니까

성령강림절을 한 해의 시작으로 해도 좋을 것이고

창조절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시작을 기념하는 절기니까

창조절을 한 해의 시작으로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는

부활절이나 성탄절이나 신년주일이나 성령강림절이나 창조절이 아니라

대림절부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합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림절은 대강절, 강림절이라고도 하는데

여기 “대”는 “기다릴 대”자로 기다린다는 뜻이고

“림”이나 “강”은 임한다, 내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기다림은 시간으로 보면 현재나 과거보다는 미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2천 년 전에 메시아가 오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대림절을 지키는 것입니까?

물론 대림절이 되면

촛불을 밝히는 것과 함께 성탄 트리 장식도 하게 됩니다.

또 대림절이 되면

성탄 캐롤도 들리고 성탄 카드와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이미 2천 년에 우리에게 오신

메시아의 성탄을 기다리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대림절은 성탄절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께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다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대림절에

성탄절도 기다리지만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도 기다립니다.

 

그런데 기다림에는

막연한 기다림과 약속이나 보증이 있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막연한 기다림은 그야말로 막연하고 기약이 없는 기다림입니다.

반면에 약속과 보증이 있는 기다림은

비록 약속의 성취가 지연되더라도 막연한 기다림과는 다릅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대림절을 맞으면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어느 쪽이겠습니까?

당연히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약속과 보증이 있는 기다림입니다.

더구나 이 약속과 보증은 예수께서 친히 하신 것이기 때문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더욱 분명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이와 관련해서 미래, 앞날이라는 말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미래나 앞날에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내가 만들어가는 미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노력하고 수고하는 것이

바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직장인들이 정기적으로 적금을 하고 예금을 하는 것이

바로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래나 앞날에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도 있습니다.

아마 죽음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미래나 앞날에는

죽음 외에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럼 우리가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절은

어느 쪽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결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도

시간으로 보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절을 보면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도

여름이라는 시간을 우리 마음대로 오게 하거나 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는 것을 보고

여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나 앞날이라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소출이 너무 많아서 창고를 하나 더 짓고

거기에 여러 해 동안 쓸 것을 쌓아두고자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즐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부자를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미래와 앞날이라는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창고를 짓고 자기의 소유를 거기에 쌓아두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그 영혼을 도로 찾아가시면

그 모든 소유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거두시는 일은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우리 마음대로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에 나오는 부자는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영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창고를 짓고 소유를 늘리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모습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미래나 앞날이라고 하면

내가 만들고 내가 이루는 것부터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자세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간의 역사가 놀라운 발전을 이룬 것도

바로 이런 개척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개척 정신이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의 미래나 앞날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말씀으로 보면 여름을 억지로 오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창고를 짓고 그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절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두 가지 시간을 함께 살피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앞날에는 분명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앞날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

하나님의 시간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또 34절부터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이 하나님의 시간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방탕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 등으로

우리의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세상의 것들로 인해서 둔해지면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마음이 세상의 것들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36절에서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되고

재림하시는 예수께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미래만 생각하고

어둠의 행실 가운데 있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교회력에는 예전색이라고 해서 상징하는 색깔이 있습니다.

대림절의 예전색은 앞에 보시는 대로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신앙적으로 보면

예수께는 메시야의 존귀와 위엄에 대한 상징입니다.

반면에 우리 인간에게 보라색은

메시야를 영접하기 위한 우리 인간의 참회와 정결을 뜻하는 색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일은

참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대림의 촛불을 소망과 평화, 사랑과 기쁨의 빛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진실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렇게 진실한 회개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믿음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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