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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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생명의 빛으로 평화를 노래하라 
본문말씀 시편 36:5-9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1-20 
생명의 빛으로 평화를 노래하라!
 
시편 36:5-9
 
오늘은 우리 교단 총회가 제정한 ‘여신도회 주일’입니다.
1937년 1월 셋째주일에 제정되었으니까 어느덧 80년을 지났습니다.
실제로 여신도회 전국연합회에서는 10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여신도회 주일의 주제를
“생명의 빛으로 평화를 노래하라!”로 정했습니다.
사실 여신도회는 지금까지 이 주제처럼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면서 선교활동에 힘써왔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여신도회는 변함없이
생명을 살리고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이루는 일에 힘쓰겠다는
다짐과 결단을 담아서 올해 여신도회주일 표어를
“생명의 빛으로 평화를 노래하라!”로 정했습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도 함께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생명의 빛으로 평화를 노래하라!”
 
그런데 이 표어에서 이야기하는 평화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크게 보면 서로 반대되는 두 종류의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의 평화’와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둘 다 평화를 이야기하는데
서로 반대가 된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로마의 평화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힘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해서
안정을 이룬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평화는 힘으로 억눌러서 이룬 평화입니다.
실제로 우리 인간세계를 돌아보면
예나 지금이나 로마의 평화처럼
힘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힘이라고 하면
우선은 군사력이나 무기부터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권력, 경제력, 학력 같은 것이
평화를 이루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좌우간 로마의 평화는 어떤 힘이든 힘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없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힘이 없는 쪽도 로마의 평화와 같은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힘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평화는
결코 영원할 수가 없고 참된 평화도 될 수 없습니다.
 
남북을 둘러싼 국제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지금도 전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평화는 서로 힘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협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핵무기라는 힘을 가지고 있고
미국은 경제제재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힘이 없으면 평화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에게 먼저
핵무기부터 포기하라고 하고 경제제재부터 풀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이런 로마의 평화와 반대가 되는 또 다른 평화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이루어주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요한복음 14:27에는 평화와 관련된 말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한복음 14:27).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평안을 준다고 하시면서
자기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세상이 주는 평화가 로마의 평화라면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는 바로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로마의 평화와 반대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평화는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로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평화는 십자가의 희생과 화해로 이루어지고
나누고 섬기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36편 말씀에서도
5절에서는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6절에서는 주의 의가 하나님의 산들과 같다고 해서
하나님의 ‘정의’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새 번역으로 보면 하늘에 있다는 말은 하늘에 가득 차 있다고 했고
하나님의 산들과 같다는 구절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그만큼 넓고 크고 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넓고 크고 깊은 사랑과 정의로
당신께 피하는 사람들을 품으시고, 먹이시고, 마시게 하시는 분입니다.
심지어 6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신다고 했는데
새 번역으로 보면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여신도회주일의 주제를
시편 36편 말씀으로 보면
그 무엇보다 크고 넓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빛으로
환하게 열린 평화의 미래를 본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로마의 평화를 그리스도의 평화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힘으로 이루어지는 로마의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정의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바라보는 사람이고
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로마의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바라보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어주신 예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예수께서는 평화의 주님으로 오셨는데
복음서를 보면 예수 때문에 갈등과 불화가 생기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평화 때문에
가족들조차도 다투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화해하는 평화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도
인간과 세상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을
싫어하고 거부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평화는 힘으로 이루어지는 로마의 평화가 아니라
사랑과 정의로, 나눔과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그런데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사랑과 정의를 무시하고 나눔과 섬김을 거부하고 힘과 권력만 찾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예수께서 아무리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고 해도
결코 반가운 분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평화의 왕이신 예수 때문에
갈등과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가 올해 표어성구로 삼은 마태복음 5:9을 보십시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
여기 화평도 그리스도의 평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누구를 가리켜서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새 번역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을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랑과 정의로 이루어지고 나눔과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평화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실제로 사랑과 정의에 힘쓰고 나눔과 섬김에 힘써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도 그리스도의 평화와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여기 쉬게 하겠다는 예수의 말씀도 평화를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평화를 주겠다고 하셨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면 모두 다 오라는 말씀입니다.
의인만 오라 하지 않으시고 죄인도 부르셨습니다.
주인만 오라 하지 않으시고 종도 부르셨습니다.
남성만 오라 하지 않으시고 여성도 부르셨습니다.
어른만 오라 하지 않으시고 어린이도 부르셨습니다.
건강한 사람만 오라 하지 않으시고
병든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도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분열과 장벽이 생기지만
예수의 부르심에는 아무런 장벽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받아주셨습니다.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시고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평화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주보에 소개한 예배자료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발전 속도가 빠른 도시에는 공통적으로 3T가 높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T는 테크놀로지(Technology)로서
발전하는 도시는 기술 수준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테크놀로지, 기술 수준이 높으려면
탤런트(Talent)가 많은 사람, 재능이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T는 탤런트(Talent)입니다.
발전 속도가 빠른 도시에는 재능 있는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T는 관용을 뜻하는 톨레랑스(Tolerance)입니다.
발전하는 도시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정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용의 정도가 높으니까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재능 있는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기술 수준도 높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과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이 더 나은 모습으로 성숙하게 되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관용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오늘 기념주일로 지키는 여신도들을 비롯해서 우리 모두가
넉넉한 관용의 마음으로
사랑과 정의를 행하고 나눔과 섬김을 행하는데 힘쓰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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