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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본문말씀 누가복음 4:21-30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2-03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누가복음 4:21-30
 
정신적인 장애 중에는 자폐증이라는 장애도 있습니다.
자폐증을 겪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폐증을 겪는 사람은 주의력이 부족해서 늘 행동이 산만합니다.
또 말하는 능력이 아주 부족해서
옆에서 누가 미소를 짓거나 눈을 맞추어도
거기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또 무슨 일이든지 별로 관심이 없고 매사에 소극적입니다.
자폐증을 겪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듣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귀가 멀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귀로 들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도 새겨듣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알프레 토마티)은
자폐증을 앓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곤충이 자기 주위를 날아다니는 소리는 들어도
바로 곁에서 어머니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분명히 그들도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 듣지는 않습니다.
또 그들은 보기는 합니다.
하지만 주의 깊게 보지는 않습니다.
또 그들도 말을 합니다.
하지만 꼭 해야 할 말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폐증의 특징을
우리의 믿음과 연결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믿음에도 자폐증과 같은 증세가 나타날 때가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제대로 듣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 기뻐하고 감격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쁨과 감격은 너무나 쉽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원망과 불평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말씀은 그 앞부분과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구세주라고 합니다.
또 우리는 예수께서 구세주로 전념하셨던 시기를 공생애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말씀 앞에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께서 구세주로서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으로
예수의 공식적인 취임사가 나오는데 바로 18-19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
이 말씀이 얼마나 특별했던지 20절을 보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주목해서 봤다고 했습니다.
 
오늘말씀은 바로 여기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먼저 21절을 보면 예수께서 자기를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취임사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취임사의 말씀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아주 놀라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누가복음 4:22).
새 번역에서는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더욱 실감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누가복음 4:22).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감탄을 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그들은 더 이상 감탄도 하지 않고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야말로 자폐증을 겪는 사람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장 22절을 보십시오.
분명히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감탄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뭐라고 했습니까?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자기들이 볼 때 예수는 별 볼 일 없는 집안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결코 특별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기들도 예수의 말씀을 듣고 감탄하고 놀랐으면서도
어느새 자기들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함부로 판단한 것입니다.
감탄할 정도로 놀라운 말씀을 들었으면
마음의 문을 더 크게 열어야 마땅할 텐데
그들은 정반대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문이 닫히고 나니까
예수의 말씀에 대해서도 더 이상 감탄하고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8-29절을 보면 예수의 말씀에 대해서 화를 냈습니다.
화가 얼마나 컸던지
예수를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어서 떨어뜨리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수의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감탄하고 놀라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중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화를 냈겠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누가복음 4:24).
고향은 누구에게나 말만으로도 반갑고 정겨운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이나 추석이 되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습니다.
마침 모레가 설날이라서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고향을 찾아오신 분도 계시고
이제 고향을 찾아가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고향을 찾아오는 가족을 맞이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만큼 고향은 우리에게 소중한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늘말씀에서 고향에 대해서
우리 생각과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고향을 반갑고 정겹고 소중한 곳이라고 하는데
예수께서는 고향을
선지자가 하나같이 환영을 받지 못하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의 말씀은 고향 자체가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고향이 같은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명절이 되어도
고향을 찾기 꺼려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오랫동안 알아왔다는 것 때문에 생긴
선입견과 고정관념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속된 말로 크게 출세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의 지난 시절을 아는 고향 사람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예수의 말씀도
바로 이런 뜻입니다.
오래 전부터 알아왔다고 생각하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우리가 정말 보고 들어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다고 불평만 하고
예언자들이 전하는 말씀은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말씀 가운데 25-27을 보면 예수께서도 그 증거로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있었던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엘리야 시대에는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도 극심한 가뭄과 흉년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가뭄과 흉년의 시달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사렙다라는 이방 땅에 살고 있는 홀로 된 여인뿐이었습니다.
또 엘리사 시대에 대해서는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낫게 된 사건을 소개하셨습니다.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사가 깨끗이 낫게 한 사람은
수리아의 이방인 나아만 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두 사건은 분명히
열왕기상 17장과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결코 예수께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이 두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이 못마땅해서
화를 내고 낭떠러지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오늘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과 별로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하나님이 멀리 계시면 멀리 계신다고 원망하고
가까이 계시면 가까이 계신다고 불편해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 역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폐증을 겪는 사람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소개하신
사렙다의 홀로 된 여인과 수리아 사람 나아만을 한 번 보십시오.
둘 다 이방인인 그들에게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엘리야와 엘리사의 말씀을 경청했다는 것입니다.
사렙다의 홀로 된 여인은 엘리야의 말을 듣고 순종했을 때
통의 밀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리아 사람 나아만도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서 나왔을 때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가운데
믿음의 자폐증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선입견과 고정관념도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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