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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2/17] 복과 화에 대한 기준

황현석 2019.02.19 10:11 조회 수 : 92

설교제목 복과 화에 대한 기준 
본문말씀 누가복음 6:20-26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2-17 
복과 화에 대한 기준
 
누가복음 6:20-26
 
복, 행복, 축복은 듣기만 해도 좋은 말입니다.
또 기왕이면 복을 풍성히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에도
복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장롱에서부터 이불과 베개에까지 복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고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에도 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누리고 싶은 것이 복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부터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도
복에 대한 말씀이나 복된 사람,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
아주 많습니다.
오늘 교독문으로 함께 교독한 시편 1편도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팔복도
예수께서 직접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이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사람,
예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을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니까 당연히 맞는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만큼 우리 그리스도인이 좋아하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이 말씀이 당연히 맞는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굳이 구분을 해서 보자면
온유한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을 맞다고 인정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을 복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당장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이든 실제 생활이든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을
맞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특히 그 당사자가 이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맞는 말이라고,
정말 자기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냐고
화를 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으로 애통해 하는 사람이
복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불의한 현실 때문에 고통을 겪으면서 의에 주린 사람이
과연 무슨 행복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옳고 선한 일을 하면서도 박해를 받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우리 자신이 이런 경우를 당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평소에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니까
당연히 맞는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가난하게 되었을 때,
애통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불의한 현실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었을 때,
옳고 선한 일을 하면서도 박해를 받게 되었을 때
누가 우리에게 복이 있다고 하면
아무리 믿음이 신실한 사람이라도 맞다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분명히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을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도 이 팔복과 같은 말씀입니다.
물론 오늘말씀은 마태복음의 팔복을 그대로 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오늘말씀에서는
가난한 사람, 지금 주린 사람, 지금 우는 사람,
또 인자로 인해서 박해를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뒤에는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부요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누가 복 있는 사람이고 누가 화를 당한 사람입니까?
가난한 사람, 지금 주린 사람, 지금 우는 사람,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은 사람이 화를 당한 사람이고
부요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정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지금 주린 사람, 지금 우는 사람,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은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고
부요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모두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팔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시는 행복한 삶이란 것이
세상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세상에서는 심령이든지 육신이든지
가난한 것보다는 풍성하고 넉넉한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또 슬프고 애통하는 일이 없어야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도 교만한 사람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고
예수도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마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욕심입니다.
또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때
더 기쁘고 즐거운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또 불의한 현실로 인해서 고통당하지 않아야 행복한 삶입니다.
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도 하셨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특히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우리의 속마음은 받을 때 더 좋지 않습니까?
또 마음이 청결한 것도 좋지만
세상에서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실질적인 유익이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이 이루는 화평을 누리기만 원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나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이 힘들게 이루어놓은 화평도 쉽게 무너뜨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또 의를 위해서 핍박받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보람된 일이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은 그런 일을 못 본 척 외면할 때도
너무나 많은 것이 세상입니다.
 
이렇게 행복한 삶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의 말씀이지만 참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는 더 힘든 것이 예수의 행복론입니다.
다같이 행복을 말하면서
예수와 우리의 방법이 왜 이렇게 차이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대체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행복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곳곳에서 교만한 사람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교만이 단순히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간관계가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벨탑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왜 바벨탑을 쌓으려 했습니까?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자기의 이름을 하늘에 닿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하나님보다 높아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교만은
하나님까지도 외면하고 무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교만을 문제 삼으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만을 죄로 여기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와 다른 기준으로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셨는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든 육신이든 풍요로울 때는 아쉬움이 없습니다.
갈급함도 덜 합니다.
자연히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하고 갈급하면 하나님을 찾게 되니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또 슬픔이나 애통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당하기 벅찬 슬픔과 애통함이 있을 때는 절대자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반면 온유함은 하나님을 찾게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훌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은 사람,
이 모두가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이런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보실 때
복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요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도
무조건 그렇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부요하기 때문에, 지금 배부르기 때문에, 지금 웃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칭찬받기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을 통해서
복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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