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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3/17]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황현석 2019.03.21 10:59 조회 수 : 66

설교제목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본문말씀 누가복음 13:31-35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3-17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누가복음 13:31-35
 
오늘말씀은 “곧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 때라는 시간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33년이라는 시간의 대부분을 갈릴리 나사렛에서 보내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은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을 앞둘 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 앞에 나오는 21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실 때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시지 않고 여러 마을을 다니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도 가르치시고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서는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시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순간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31절에서 보는 대로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니까 빨리 떠나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본적으로 예수를 싫어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오히려 예수를 걱정하고 있으니까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과거의 전통에만 얽매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율법과 전통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과거의 율법과 전통에만 얽매여서 생활을 하고
삶의 모든 것을 이 과거의 율법과 전통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니 바리새인의 삶의 방식에는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은 잃었던 과거의 전통을 되찾는 것 뿐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도
예수께서 다치시는 것이 걱정되어서 지금 당장 떠나라고 했지만
예수께서 만드시는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예수께서는 자기를 걱정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선 32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헤롯을 여우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서운 사람을 가리킬 때 사자에 비유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헤롯을 여우라고 하신 것은
무섭고 두려워서가 아니라 눈앞의 권력과 소유에만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헤롯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 권력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조카이자 동생의 아내였던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을 비판한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헤롯은 지금 현재에만 만족하고
현재에만 영원히 안주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헤롯으로서는 예수 역시 자기가 누리는 권력에 방해가 되면
언제든지 죽일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헤롯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32-33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어느 누구도 자기가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가 갈 길로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32절의 “제삼일”이라는 말은 굳이 부활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단기간에”, “가까운 시일 내에”라는 뜻입니다.
또 “완전하여지리라”는 말은
“사명이 끝나리라”,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뜻입니다.
또 33절에서는 이렇게 가까운 시일 내에 완성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3:33).
예수께서 완성하실 일은
바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렇게 하시지 않고는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가시는 길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길을 막고자 하다가 예수께 사탄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길은
설사 십자가의 길이라도
가지 못하게 막을 길이 아니라 함께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길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그들에게는 가나안 땅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처음 출애굽 했던 사람들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구원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앞의 힘든 것만 보고 약속의 땅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구원은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예수께서 가시는 길은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과 모레도 계속되는 길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도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함께 달린 강도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번 따르는 것으로는 절대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되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예수께서는 결국 이 길을 혼자서 가셨습니다.
분명히 예수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현장에는 5천 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환영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은 늘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실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혼자 직접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도 혼자 직접 지셨습니다.
강도를 구원하시는 일 역시 혼자 직접 감당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중요한 믿음의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아무리 공경한다고 해도
예수를 따르는 것은 부모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음으로 34절에는
예수께서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시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분명히 믿음의 중심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 것뿐이었습니다.
암탉이 자기 새끼를 모으듯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모으려 해도 그것을 원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배신과 반역만 일삼았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배신과 반역을 일삼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배신과 반역은
예수까지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바로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애통해 하십니다.
자기의 억울한 죽음을 애통해 하신 것이 아니라
독생자까지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끝까지 거부하고 외면하고 거역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애통해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35절을 보면
예수의 애통은 결국 심판과 멸망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집”은 말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도성과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은 예수의 말씀대로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잃고 지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대가로 오랜 세월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오늘말씀은 우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조차 기꺼이 감당하신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서 이렇게 한량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예수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진정으로 감사하며
더 이상 예수를 애통하게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예수께서 가신 길을 함께 따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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