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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4/07]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황현석 2019.04.09 08:30 조회 수 : 40

설교제목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본문말씀 요한복음 12:1-8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4-07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2:1-8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부근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로서
예수께서 마지막 며칠 동안 머무셨던 숙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월절 무렵에는 예루살렘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예루살렘 안에서 숙소를 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아마 우리가 해마다 연초에 해맞이 명소를 찾고
유명한 축제가 이루어지는 곳을 찾았을 때를 숙소를 찾기가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숙소는 베다니에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는 이 베다니에서도 특별한 사역을 펼치셨습니다.
베다니에 살고 있던 나병환자 시몬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나병은 병도 병이지만 그 병 때문에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병을 고쳐주셨다는 것은
병만 낫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죄의 굴레를 벗겨주셨다는 말입니다.
또 죽은 지 4일이 지난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신 곳도
바로 이 베다니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예수의 행적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베다니는 고단한 육신이 안식을 누리는 곳이었습니다.
또 베다니는 치유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은혜와 회복의 터전이었으며
죄와 죽음의 권세조차 정복된 구원과 생명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을 보면
베다니는 이렇게 예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를
받기만 하고 누리기만 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라는 여인이 예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
베다니는 헌신의 터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헌신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우리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오늘 말씀에 소개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이 사건이,
어떤 상황 속에서 일어난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과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 벌이신 행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사실 예수는 이미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부터
군중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받았기 때문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더욱 많은 감시를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도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만 계속하셨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찾으셔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어주는 사람을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심지어 성전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까지 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성전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대제사장들이나 율법학자들 눈에는
예수께서 얼마나 불경스럽고 불온하고 못마땅했겠습니까?
정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너무나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대처방안을 세우게 됩니다.
그들이 세운 대책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말씀 앞에 나오는 11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예수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53절을 보면 아예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체포해서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런 와중에 예수께서는
베다니에 가셔서 자기를 위한 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이 예수를 찾아와서
자기가 가져온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쏟아 부었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느 누구도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또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값비싼 향유를 그냥 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도 뭐라고 했습니까?
왜 300데나리온이나 받을 수 있는 향유를 버렸느냐고,
만일 그렇게 버리지 않았으면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도 그동안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가난한 사람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예수 당신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가르침에 따르자면
비싼 향유를 버린 마리아의 행동은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평소의 말씀이나 행동으로 생각하자면
향유를 버린 마리아의 행동을 꾸짖어야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향유를 부은 마리아인의 행동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7-8절을 보십시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12:7-8).
얼핏 보면 이 말씀은
예수를 섬기는 일과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을 서로 구분하시고
이 가운데 예수를 섬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주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서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이
덜 중요하게 생각될 수도 있고
다른 예수의 말씀과 잘 맞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결코 상황에 따라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다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사실 이 말씀은 이미 구약 신명기 15:11에서도 소개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명기 15:11).
우리가 사는 땅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풍요가 넘쳐나고 화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명기 말씀이나 예수의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손길 역시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의 말씀입니다.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12:8).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행위에 대해서 책망 대신
아주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한복음 12:7).
심지어 마가복음서 말씀을 보면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어떤 말씀까지 하셨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가복음 14:9).
다른 사람은 쓸데없이 향유를 버렸다고 비난하는 마리아의 행동을
예수께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도대체 예수께서 이 여인의 행위를
이토록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칭찬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씀 뒤에 이제부터 예수께서 겪으실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무서운 음모에 의해서 비극적인 죽음을 겪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런 예수에게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추한 발에 아낌없이 쏟아 부어 사랑을 표시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고 했는데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은
왕이고 메시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향유를 예수께 부어서
예수께서 왕이고 메시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메시야로 인정하는 것은
대제사장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제사장이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메시야로 인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예수를 죽일 살인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의 제자 가룟 유다마저도 예수를 배신하고
이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적대자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버림을 받으시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소개된 마리아는
바로 이렇게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될 예수를 찾아와서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향유를 바쳤습니다.
더구나 메시야로, 왕으로 인정하고 헌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여인을 칭찬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신 길은 분명히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보여주신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원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난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길을 누가 준비했습니까?
대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마리아라고 하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바로 이 여인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께 부었습니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구주 예수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곳이 바로 베다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다니는 진실한 헌신이 담겨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다니에는 이런 헌신이 있었기에
그곳에는 평안과 안식도 있고 회복과 치유도 있고
구원과 생명의 터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베다니의 사건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마리아처럼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베푸시는 평안과 안식, 회복과 치유, 구원과 생명의 은총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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