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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본문말씀 누가복음 23:1-12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4-14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누가복음 23:1-12
 
오늘은 사순절 마지막 여섯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에서는 사순절 마지막 주일을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종려주일은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환영하며 흔들었던 나뭇가지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큰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종려주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종려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이 좋아하는 나무로서
성경에서도 많은 열매와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아름다움과 번성의 상징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도
그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성전을 찾을 때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표시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특히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대를 환영할 때
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종려나무는 거룩함, 승리, 번영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열렬히 환영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수께서 가신 길은 언제나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8:20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태복음 8:20).
여기 인자는 바로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서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으셨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고난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당장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열렬히 환영했던 무리들부터가
불과 며칠 사이에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말씀 1-2절에서 보는 대로
그들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했습니다.
예수는 자기들을 미혹했다는 것입니다.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가리켜서 왕이라고 그리스도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병을 고쳐주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친구가 되어주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고
나중에는 저주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물론 무리들만 예수를 고발한 것이 아닙니다.
10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를 고발했습니다.
사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는 그들의 가르침을 비판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기들 말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서는
예수가 없어야 자기들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자기들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는 예수를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예수의 말씀도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예수를 고발했는데
특히 10절을 보면 “힘써” 고발했습니다.
여기 “힘써”라는 말은 새 번역에서는 “맹렬하게”라고 번역했습니다.
 
또 오늘말씀에는 두 사람의 정치적인 권력자도 나옵니다.
한 사람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이고
또 한 사람은 유대 왕인 헤롯입니다.
12절을 보면 이들은 원래 원수라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공격하는 일에서는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말씀을 보면 빌라도와 헤롯 모두 예수께 묻는 장면도 나옵니다.
우선 3절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께 과연 유대인의 왕인지를 물었습니다.
또 8절을 보면 헤롯은 예수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절을 보면 헤롯도 예수께 여러 말로 질문을 했습니다.
 
사실 질문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질문이 많다는 것도 성장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질문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답을 몰라서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에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성장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 중에는 이미 자기가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에서는 상대방의 대답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이런 질문은 대체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질문이 되고 맙니다.
 
그럼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께 물은 질문은 어느 쪽이겠습니까?
그들의 질문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럼 예수께서는 이들의 질문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셨습니까?
이렇게 답을 가지고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고
또 다른 공격과 비난의 빌미만 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도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서만
네 말이 옳다고 하셨을 뿐이고
다른 여러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질문도 두 종류로 구분하지만 침묵도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알지 못해서 하는 침묵이 있습니다.
이런 침묵에 대해서는 알려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침묵 중에는 비겁한 침묵도 있습니다.
이런 침묵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면서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침묵 중에는 긍정적인 침묵도 있습니다.
이런 침묵은 듣고 배우기 위해서 준비하는 침묵입니다.
이런 침묵은 문제를 해결하게 만드는 침묵입니다.
우리의 옛 속담에도 침묵은 금이라고 했습니다.
이 속담은 결코 말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는 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서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깊은 침묵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께서 빌라도와 헤롯의 질문에 대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우선은 더 이상 그들과 상대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예수께서 빌라도와 헤롯의 질문에 침묵하신 것은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빌라도와 헤롯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에도 엄청난 힘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의 말은 곧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예수께서는 이들과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하늘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를 붙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가 칼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의 귀를 잘랐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칼을 다시 칼집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6:53에 나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태복음 26:53).
예수께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하늘의 천사들을 열두 군단도 더 불러내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침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셔야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도 침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침묵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무런 말씀 없이 모든 고난과 멸시를 감당하셨습니다.
 
예수의 침묵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도 받아들이시고 순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도 침묵하시면서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말과 생각을 멈추고 침묵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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