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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본문말씀 요한복음 20:19-31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4-28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9-3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주 화려하고 찬란한 모습부터 생각합니다.
우리교회 홈페이지에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성화를 도마가 예수의 허리에 난 창 자국에
손가락을 넣는 그림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에 대한 성화 중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광채가 날 정도로 흰옷을 입고서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받는 모습이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의 부활을 이와 비슷하게 묘사했습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고린도전서 15:4-6).
그런데 이 말씀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순서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나타나신 것은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게바, 베드로에게만 나타나셨고
그 다음에도 단지 열두 제자에게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또 복음서를 보면 처음에 예수의 부활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 사건, 오히려 부담스럽고 꺼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일단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부터
예수의 부활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를 죽인 사람들만
예수의 부활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전에 예수를 따르던 이들도
처음 예수의 부활을 접했을 때는
기뻐하고 반가워하기보다 오히려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예수의 무덤을 찾았다가 빈 무덤을 보고
천사들에게 부활소식을 들은 여인들부터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기뻐하기보다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또 이 여인들에게 부활소식을 접한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당신이 겪으실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여러 차례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여인들이 전하는 부활소식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만큼 예수의 부활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부활은
어느 누구에게도 기쁨과 감격의 사건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의 부활은 두렵고 무서운 사건,
믿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사건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에 나오는 제자들도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1절부터 보자면 그들은 이미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19절에는 뭐라고까지 했습니까?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무서워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친 도둑으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소식을 듣고도 기뻐하거나 반가워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또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 역시
나중에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자기가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직접 보지 못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신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십자가 현장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부활소식을 듣고 나서도 믿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
너무나 비겁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생각에는
이런 제자들을 만나셨다면
왜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느냐고 호된 질책을 하셔야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나중에 도마가 함께 있을 때에도 똑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비겁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제자들인데도
아무런 책망 없이 평강이 있기를 바라는 말씀부터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겠습니까?
물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그야말로 인간적인 분노와 어울리지 않으시는 분,
하나님과 똑 같이 신령한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평강이 있기를 바라는 예수의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심정과 처지를
다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제자들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랐던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으니까 얼마나 허탈하고 실망했겠습니까?
더구나 이제는 예수의 시신마저도 잃어버렸고
잘못하면 자기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친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너무나 절망스럽고 너무나 불안한 처지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바로 이런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이 있기를 바라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야말로 평화의 인사를 건네시고 평화의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한복음 20:20).
문을 걸어 잠글 정도로 무서워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자기가 보지 못하고는 믿을 수 없다던 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사라지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평화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화라고 하면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흔히 우리는 불안하고 근심되는 것이 없는 마음의 평정이나
지금 현 상태가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평화로 여깁니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 번씩 말씀드리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가 나이를 먹으면서도
신체나 지혜가 자라지 않고 변함이 없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본인은 물론이고 부모님과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도 큰 불행이요 고통입니다.
또 씨를 뿌리고 땀흘려 수고한 땅에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이 역시 평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속상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변화가 없는 것을 가지고
평화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참 평화가 어떤 것인지는
과학의 세계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좀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모든 물질의 기초단위를 분자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분자는 원자라는 것으로 더욱 세분되어 있고
원자 또한 양자와 전자, 중성자, 중간자 같은 미립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분자라는 것이 제대로 역할을 하자면
이러한 미립자들이 늘 일정한 힘을 갖고 움직여야 하고
이때를 가리켜서 분자가 안정한(평화) 상태에 있다고 말합니다.
불안한(평화가 깨어진) 상태라는 것은
단지 다른 분자와의 결합이나 안팎의 자극으로 그 움직임에 이상이 있어서
분자가 원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킬 뿐입니다.
이렇게 과학의 세계로 봐도
평화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분자가 제기능을 발휘하도록
각각의 미립자들이 맡은 바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세계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떠난 마음의 평안만으로는
절대로 완전한 평화를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에
설령 지금 당장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이런 현실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평화로운 상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참된 평화는 오직 우리 각자가 맡은 바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도 그저 말로만 평화의 인사, 평화의 복음을 건네시지 않고
몸소 평화를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영광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단절된 세상과 인간의 관계를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적에 충실한 삶의 대가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런 모습은 부활하신 다음에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만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건지시고
제자들만 의심과 불신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평화의 인사를 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도 평화의 인사를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다만 이제는 21절에서 보는 대로
당신께서 직접 하시지 않고 제자들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이유가
평화를 위한 삶 때문이었으니까
제자들 역시 평화를 위한 삶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또 하나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한복음 20:22-23).
절망과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참 평화를 주신 것도 감사한데
여기에 더하여 성령의 능력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물론 성령의 능력을 선물로 받았다고 해도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여전히 위험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신
평화의 인사와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제자들로서는
이제 그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도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에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부활하신 예수께서 전해주신 평화의 인사가
제자들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그 어떤 핍박이나 박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리 가혹한 핍박과 박해가 닥쳐도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꿋꿋하게 자기들의 믿음을 지키며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헌신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도마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도마는 인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전해주신 평화의 인사, 평화의 복음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예수께서 건네신 평화의 인사, 평화의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물론 이 평화의 복음을 전해 받은 오늘 우리의 믿음도
도마처럼 의심과 불신에 얽매인 연약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닥치는 삶의 문제 때문에 주저앉아 낙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도
평화의 인사, 평화의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성령의 능력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세상에 평화의 인사,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평화의 인사를 건네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세상에 평화의 인사를 건네며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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