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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5/12] 보라 네 어머니라

황현석 2019.05.15 12:59 조회 수 : 48

설교제목 보라 네 어머니라 
본문말씀 요한복음 19:25-27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5-12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25-27
 
해마다 어버이주일에는 노래나 시를 소개해 드린 것 같습니다.
올해도 동요 한 편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이 동요는 3년 전에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발표한 동시였습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가장 받고 싶은 상”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가
이번에 동요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그동안 숨겨놨던 말
이제는 받지 못할 상
앞에 앉아 홀로되내(뇌)어 봅시(니)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고마웠어요."
"엄마, 편히 쉬세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 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요.
엄마가 좋아했던반찬들로만
한가득 담을게요.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울 엄마 얼굴(상)
(가장 받고 싶은 상, 우덕초등학교 6학년 1반 이슬)
 
이 시를 보면 엄마와 함께 지냈던 시절과
엄마가 차려주셨던 밥상을 그리워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어린이는 무엇보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 역시 이렇게 시적인 표현은 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다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 함께 부르겠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선 문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버이의 정성은 그지없어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버이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버이의 사랑은 지극하여라
 
모쪼록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녀를 잘 양육하여
건강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부모님의 은혜라는 측면에서 오늘말씀에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으로 다 끝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마리아가 예수 때문에 마음을 졸였던 적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기 예수를 잉태할 때부터 얼마나 부담스럽고 위험한 일이었습니까?
정혼한 몸으로 예수를 잉태했으니
잘못하면 파혼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에게 부정한 여인이라고 낙인이 찍힐 수도 있었습니다.
해산할 때도 방이 없어서 구유에 눕혀야 했습니다.
또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 때문에
애굽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어릴 때만 마리아가 걱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본격적인 사역을 펼치신 다음에도
예수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와 대제사장 같은 사람들 때문에
마리아는 여전히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예수로 인해서 늘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예수께서 적대자들의 음모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까지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이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 밑에서는 저주와 조롱의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랑하는 아들이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에는 못이 박히고
허리에는 창이 찔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런 아들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목말라하는 아들에게 물 한 모금 줄 수가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못 박혀 죽는 것 같은 심정으로,
아니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야말로 자기 가슴에 예수를 묻는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은 마리아의 슬픔만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평생 동안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을 졸이게만 했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 마리아에게 참된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솔직히 어버이날과 어버이주일을 지키는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에 비해서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아놀드 토인비)가 예상한대로
오늘 우리시대는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노인들은 무시와 소외와 홀대 속에서
점점 더 외로워지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하루라도 별도로 정해서
부모의 은덕을 기억하고 감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십시오.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섬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예수께서는 친히 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순간은
당신 자신도 하나님을 향해 왜 나를 버리시느냐고 부르짖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고난보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먼저 헤아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신 것도,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고백을 하신 것도
어머니의 아픔을 살피신 다음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말 그대로
모든 사역을 완성하시고 마쳤다는 고백입니다.
또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말씀 역시
맡겨주신 사역을 마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려서 하신 일곱 말씀을 순서로 보면
다 이루었다는 말씀과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말씀은
마지막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말씀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른 사역을 아무리 많이 하셨어도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살피시기 전에는
결코 사역의 완성을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위로하시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아들 대신 죽지 못해서 더욱 괴로워하고 있을 어머니 마라아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머니와 함께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을 가리켜서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와 요한, 요한과 마리아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입니다.
하지만 공생애 기간에 예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왔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가복음 3:33, 35).
서로 남남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누구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리아와 요한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는 어머니 마리아 외에도 피를 나눈 동생들이 있었습니다.
또 요한 외에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도 10명의 제자들이 더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골고다 언덕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 외에는 아무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과 제자들 모두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형제자매요 어머니라는
예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은 이미 새로운 가족이 된 셈입니다.
이런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신 말씀이 바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따라 온 것은 분명
아들과 스승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이제 서로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보고 있는 어머니에게는 요한을 새로운 아들로 삼으라고 하셨고
스승을 보고 있는 요한에게는 자기를 대신해서
마리아를 새로운 어머니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바로 그 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에게
혈육의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물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성경에서도 아주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십계명을 우리는 흔히
하나님에 관한 계명과 인간에 관한 계명으로 구분하는데
인간에 관한 계명 가운데 첫 계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인간과 관계된 계명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인간관계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또 신약성경 에베소서 6장에서도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순종하지 않으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마리아와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부모를 공경하는 범위를 더욱 확대시켜 주셨습니다.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새로운 가족관계를 이루어서 살피고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생전에는 물론이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리아와 요한을 통해서
혈연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직접적인 가족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마리아와 요한이 되어서
믿음의 가족을 이룰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를 비롯해서 어른들을 공경하고
자녀를 비롯한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가운데
복된 믿음과 삶을 이루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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