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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5/19]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황현석 2019.05.21 10:21 조회 수 : 52

설교제목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본문말씀 요한복음 13:31-35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5-19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1-35
 
성경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여러 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부터가 우리에게는 아주 자연스럽지만
이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사도행전 11:26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사도행전 11:26).
또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별로 좋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비웃고 멸시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말은 원래 전쟁터에서 쓰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는 내 편이 아니면 적입니다.
또 전쟁터에서는 누구 편이냐에 따라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또 내 편이 살기 위해서는 적이 죽어야 합니다.
그만큼 전쟁터에서는 누구 편이냐는 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와 같은 편에 있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와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성도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성도는 말 그대로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당시는 로마제국이 지배를 하고 있었는데
로마제국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부패와 타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중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했기 때문에
성도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새 술에 취한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새 술에 취했다는 말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조롱하는 말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새 술에 취했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충만해서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여러 나라의 말들을 하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새 술에 취했다는 말에는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힘에 사로잡혔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에도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직접 불러주신 제자라는 말입니다.
아마 제자와 비슷한 말이 학생일 것입니다.
사실 제자와 학생 모두 배운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와 학생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학생이라고 할 때는 배우는 것이 한부분입니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 내용을 배우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내용만 배우면 됩니다.
하지만 제자는 배우는 것이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배우는 시간이나 배우는 내용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제자는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배워야 합니다.
학생이 선생의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제자는 스승의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인격과 성품을 포함해서 스승의 모든 것을 닮고 본받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제자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11:29을 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
예수께서도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멍에가 무엇이겠습니까?
멍에라고 하니까 죄로 인한 짐이나 세상에서 겪는 고난을
생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죄의 멍에나 세상의 멍에가 아니라 나의 멍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멍에는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당하신 모든 일,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
이 멍에를 메고 예수께 배우라는 뜻입니다.
예수와 함께 하면서 예수께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와 함께 하면서 예수를 배우고 따르고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도 바울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아주 신비롭고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예수를 배우고, 예수를 알고,
예수를 얻고, 예수 안에서 발견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봐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봐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도록 하기까지
본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기 때문에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죽음까지 본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시 오늘 요한복음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을
예수의 제자로 알고 인정하는 증거를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예수의 제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무엇을 많이 알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고 본받아야 되는 것인데
특별히 오늘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새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라는 계명은 이미 구약에서도 볼 수 있는 계명입니다.
레위기 19:18을 보십시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위기 19:18).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새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만큼 중요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새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하는 정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데 얼마나 사랑하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되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을 예수의 제자로 알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당장 오늘 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특히 다른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하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좋은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가리켜서
말이 많은 사람, 더 정확하게는 말만 많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 말만 많은 사람이 무슨 뜻입니까?
말한 만큼 행위가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말이 아무리 많아도 행실이 함께 하면
말만 많다는 말은 물론이고 말이 많다는 소리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말만 있고 행실은 없으니까
말이 많은 사람, 심지어 말만 많은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어떠셨습니까?
아무리 우리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도
예수를 보고 말이 많다고, 말만 많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삶이 전혀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만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먼저 사랑의 계명을 지키셨습니다.
그럼 누구를 사랑하셨습니까?
제자들만 사랑하시지 않았습니다.
알고 계신 분들만 사랑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원수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의 원수가 과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뿐이겠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사람은 누구나 원래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라면 예수와도 원수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그대로
원수였던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은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 된 것부터가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무슨 조건을 다신 것도 아니고
무슨 대가를 요구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 조건도 없고 아무 대가도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서 미심쩍어 하는 면이 있습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이 아무리 중요한 계명이라고 해도
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원수는 보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복하면 상대방은 그냥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상대방도 또 보복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수에 대한 보복은 끊임없는 악순환만 되풀이하게 됩니다.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먼저 보복을 멈추고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은
보복의 악순환을 먼저 끊으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똑같은 허물인데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내가 미워하는 원수일 경우에는 아주 잘 보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허물뿐만 아니라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허물도
덮어주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의인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보실 때 죄인이라면 얼마나 허물이 많겠습니까?
하지만 예수께서는 죄인의 모든 허물을 덮으시고
그들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바로 이렇게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본받고 행하는 가운데
이 제자라는 증거를 나타내는 믿음과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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