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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나니 
본문말씀 요한복음 14:25-31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5-26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한복음 14:25-31
 
우리 인간은 능력도 많지만 한계를 느낄 때도 많습니다.
또 칼 융이라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의학자는
한계를 느끼는 사람은 누구나
심리적으로 최소한 세 가지 현상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먼저 한계를 느끼는 사람은 불안함도 함께 겪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계를 느낀다는 것은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를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함을 감추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한계를 느끼게 되면 짓눌리는 억압 감정도 겪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계를 느끼는 사람은 똑같은 무게도 더 무겁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신에 대해서 용기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계를 느끼는 사람은 외로움과 고독감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사실 한계를 느끼고 그 한계 때문에 실패를 하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와 실패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나의 한계와 실패 때문에
나를 알고 나와 가까웠던 사람이 모두 나를 떠나서
내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육신이 한계를 느끼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직접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은 건강과 몸입니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육신이 한계를 느끼면
의지도 없어지고 의욕도 사라지게 됩니다.
또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도
모두 자기를 떠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계를 느낄 때는
나 혼자뿐이라는 외로움과 고독감도 함께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 인간에게는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대체로
이런 질문을 직접 상대하는 사람은 철학자나 과학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질문을 해결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우리는 굳이 이런 질문을 해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핏 생각하면
우리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다 끝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과 염려와 불안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하는
걱정과 염려와 불안이 그만큼 많습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하고 또 하지 않아도 될
걱정과 염려와 불안도 있습니다.
이런 걱정과 염려와 불안은
그야말로 믿음으로 잘 다스리고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게 되고 해야 하는 걱정과 염려와 불안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하루하루를 더욱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게 되고 해야 하는 걱정과 염려와 불안은
과연 어떤 삶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인지,
과연 나는 그렇게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와 불안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본회퍼)은 믿음과 관련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 가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단독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물을 일이 아닙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 아무리 가까운 아내와 남편과 자식이라고 해도
믿음에 대해서는 단독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둘째, 단독으로 나서야 합니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혼자 나서야 합니다.
셋째, 세상과 관계된 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에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결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직도 단독으로 결정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 아직도 거추장스럽고 걸리적거리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자기를 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를 따를 수 없고 예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말씀을 보십시오.
시간적으로는 이제 몇 시간 뒤면 십자가 사건을 겪으셔야 할 때입니다.
이렇게 급박한 시간에 예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시고
정말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고 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는데
거기서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히셨습니다.
그리고는 부당한 재판과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제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30절을 보면 예수께서도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이 세상의 임금은 권력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새 번역에서는 이 세상의 통치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들과 빌라도 총독과 로마 군인들입니다.
또 예수를 배신하고 이들과 한편이 된 가룟 유다도
결국에는 이 세상의 임금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이런 세상의 권력자가 오겠다고 하신 것은
이들이 이제부터 자기에게 행할 일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바로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한복음 14:30).
무슨 뜻입니까?
세상의 권력자들이 무슨 일을 꾸미든 자기와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원어로 보면 이 말씀은
“그는 내 안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그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번역했습니다.
또 새 번역에서는
“그는 나를 어떻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번역했습니다.
분명히 몇 시간 뒷면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셔야 합니다.
매질도 당하셔야 하고 십자가 사건도 겪으셔야 합니다.
또 예수께서는 이미 이런 사실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을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예수께서는 세상의 권력자들과 당당하게 맞서야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는 그들이 욕하면 똑같이 욕하고
그들이 한 대 때리면 두 대 세 대로 갚아주고
더 나아가서 아예 무너뜨리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에게 욕을 하고 매질을 하고 심지어 자기를 못을 박아 죽이는데도
이런 일이 자기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27절에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이 말씀에 대해서도 세상의 눈으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매질을 당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가운데
누가 누구에게 평안을 주고
누가 누구에게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사람에게 더 평안이 필요할 것입니다.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도
매질을 당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더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반대로 자신이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면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자신이 매질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에게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아셨기 때문에
다른 일에 대해서는 그 무엇이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예수의 관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외에 다른 것은 그 무엇도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후예배 시간마다
이재철 목사님의 새신자반이라는 책의 내용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믿음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르고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만큼 바르고 성숙하다는 것입니다.
윌리엄 버클레이라는 분도 믿음에 대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자를 이제는 아버지로,
그리고 항상 두려워하던 하나님을 이제는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공포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는 증오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이기적인 생각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질투나 앙심에서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주 쓸모없는 존재로 알았으나 이제는 예수 안에서 소중한 존재로,
실패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성공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허무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막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꾸어지는 것,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질 때,
믿음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바르고 성숙한 믿음의 관계를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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