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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6/09] 보혜사 성령

황현석 2019.06.11 12:22 조회 수 : 31

설교제목 보혜사 성령 
본문말씀 요한복음 14:8-17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6-09 
보혜사 성령
 
요한복음 14:8-17
 
교회의 절기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절기일 것입니다.
실제로 성탄절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아주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처음 성탄절은 몇 사람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천사들 외에는 목자들, 동방박사들 말고는
예수의 탄생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헤롯 왕 같은 사람은 알아도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만큼 예수의 성탄은 조용하게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럼 부활절은 어떻습니까?
부활절은 예수께서 태어나신지 33년 만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첫 부활절도
별로 많은 사람이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또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빈 무덤을 본 사람들은
기뻐하기보다 두려워하기부터 하고 걱정부터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부활 역시
처음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었고 별로 기쁜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부활절 50일 후에 있었던 오순절 성령강림은 어떻습니까?
사도행전 1장과 2장을 보면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린 사람은 120명 정도였습니다.
또 성령이 강림하고 나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3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또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오늘 우리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아기 에수로 세상에 오시지 않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오순절 성령강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과 부활절이 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관계가 있고
모두 중요한 명절입니다.
성령강림이 있었던 오순절 역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직접적인 출발점이기에
성탄절과 부활절 못지않게 중요한 명절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성령으로 축복 인사 함께 나누겠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미리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원어로 보면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원래 법정의 변호인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변호사는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전문직입니다.
하지만 예수 당시 변호인(파라클레토스)은
대부분 직접 재판을 받는 사람의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변호인은 잘못하면
재판을 받는 친구와 함께 죄인으로 몰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당시의 변호인은 친구와 함께 죄인이 될 각오를 하고
친구와 함께 재판을 받으면서
친구에게 힘이 되어 주고 친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친구 중의 친구가 변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성령을 변호인에 비유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친구 중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가 기쁘고 즐거울 때
우리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또 성령은 우리가 슬프고 괴로울 때
우리와 함께 슬퍼하고 괴로워합니다.
특히 진정한 친구는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친구로
보혜사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면 용기를 주고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고 회복시켜 줍니다.
설사 우리 자신이 잘못해서 겪는 아픔과 고통이라 하더라도
성령은 우리에게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펼칩니다.
 
창세기 바벨탑 사건을 보십시오.
바벨탑을 쌓기 전까지 우리 인간은 원래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탑을 쌓아서
자기 이름을 과시하고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교만 때문에
언어가 갈라지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벽돌을 만들고 진흙 대신 역청을 사용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역청은 오늘 우리식으로 하면 한 번씩 말씀드린 것처럼
아스팔트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건축 재료로 보면
진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벨탑을 쌓은 곳을 시날 평지라고 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이라크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이라크는 예로부터 석유가 많은 지역이니까
바벨탑을 쌓는데 필요한 역청을 아주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그만큼 뛰어난 기술과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자기들의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게 되니까
결국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배척하고
인간의 능력만 의지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발달한 기술과 문명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인간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갈라지게 하시고
그들을 흩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사람들만 바벨탑을 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흔히 발전된 것부터 보게 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발전되었고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날과 비교해보면 오늘 우리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전화가 얼마나 귀했습니까?
전화 한 대를 마을 전체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던 때가
별로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이제는 초등학교 어린이들까지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공중전화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참 감사하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어르신들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제 강점기를 거치신 분들 중에는
아예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또 일본은 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본식 이름을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만큼 어린 시절을 일제 강점기로 보내셨습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도 고단한 삶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족상잔의 6.25를 겪어야 했고
그 후로도 지금까지 어쩌면 평생 동안
밤을 낮 삼아 수고만 하면서 지내오셨을 것입니다.
좋은 시대라는 것은 다 남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교통문화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자가용을 이용하니까 참 좋고 편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늘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운전은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상대방이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벨탑을 쌓으면 우리는 정말 영광만 누릴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욕심과 교만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했지만
그 결과는 힘들고 고단한 삶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심지어 걱정되고 위험한 일이 더 많아지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바벨탑 사건과 정반대가 되는 일이 나옵니다.
바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성령강림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방언이라고 해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고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
낯선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방언 중에는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통역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의 현장에서 있었던 방언은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
아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제자들은 대부분 평생을 이스라엘 땅에서만 지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살던 갈릴리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버림받은 땅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갈릴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부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세계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과는
삶 자체가 달랐습니다.
아마 평소 같으면 말도 전혀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강림과 함께 어떻게 되었습니까?
놀랍게도 제자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온갖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서로 말이 통하지 못했을 사람들이
난생 처음 만나서도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삶이 다르고 대화의 문도 닫혀 있었는데
이제는 대화의 문이 열리고 서로 소통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보혜사 성령이 그들에게 강림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새로운 말을 하는 자체도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 인간의 교만 때문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어려움이
성령의 역사로 해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이렇게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한 고통과 갈등까지도
회복시켜 줍니다.
 
사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와 같이 성령은 연약한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도와주고
괴로운 삶으로 시름에 잠긴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보혜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삶의 구석구석마다 보혜사 성령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분명 우리의 참된 친구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이 보혜사 성령의 능력으로
저마다 겪는 여러 모양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미 그렇게 성령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부터 생각해 보십시오.
공생애를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예수께서는 스스로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말씀과 함께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임재와 함께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공생애의 모든 사역은
보혜사 성령과 함께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능력으로 사나운 풍랑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뿐만이 아닙니다.
80이 넘은 모세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는 위기 속에서 홍해를 갈랐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져서도 살아난 사람입니다.
요셉과 바울과 실라는 모두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을 부른 사람들입니다.
스데반은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에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 같았습니다.
이들 모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겠습니까?
물론 그들의 믿음이 특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그들의 믿음을 그렇게 특별하게 했겠습니까?
바로 보혜사 성령이 그들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보혜사 성령은 오늘 우리도 돕기를 원합니다.
아니 이미 돕고 있습니다.
이 성령의 도움을 의지해서 우리 역시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준 승리의 대열에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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