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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6/23]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황현석 2019.06.26 17:54 조회 수 : 50

설교제목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본문말씀 마가복음 5:1-8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6-23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가복음 5:1-8(누가복음 8:26-30)
 
전쟁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긴 쪽이 많은 전리품을 챙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전쟁에서는
아무리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전리품을 챙길 수 없었습니다.
전리품은 무조건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전리품에 욕심을 내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다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전쟁을 치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였습니다.
한 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만일 전리품은 모두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원칙이 없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서로 더 좋은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서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좀 더 좋은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좋은 물건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자기의 전리품을 자랑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시샘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전리품 때문에
서로를 불신하고 자기들끼리 다투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무슨 전리품이든지
개인적으로 갖지 말고 모두 하나님께 바치도록 원칙을 정해놓으셨습니다.
만일 어느 누구라도 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전리품을 개인적으로 가로채면
그 자신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일 먼저 정복한 곳이 여리고성입니다.
그 다음 정복할 곳이 아이성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여리고성과 비교하면 아이성은 아주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아이성도 아주 쉽게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을 너무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여리고성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아주 쉽게 정복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보다 훨씬 작은 아이성에서는 뜻밖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전리품 때문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에서 나온 물건은
어떤 것이라도 개인적으로 갖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이 원칙을 어기고
여리고성에서 나온 전리품 몇 가지를 개인적으로 가로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보다 훨씬 작은 아이성에서
패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실 아간이 취한 물건은 외투 한 벌, 금덩이와 은덩이 한 개씩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아간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로 하여금 아이성 정복에 실패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간의 잘못을 그냥 덮어주면
다음에는 너도나도 또 다른 아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 좋은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고
그저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도 너무나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범죄에 대해서
아간 자신과 그 가족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에서 참패를 겪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범죄 때문에
그와 관련된 집단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자주 있는 일입니다.
무슨 모임이고 어떤 일이든지 한 개인의 잘못으로 인해서
모임 전체가 어려워지고 일 자체가 낭패를 겪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기에 모임이나 일이나 잘못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모임과 일에 관계된 사람이
저마다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임이든지 일이든지 다른 사람 때문에 잘못되고 있는 경우에도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되어서 세상을 썩지 않게 하고
빛이 되어서 세상을 어둠에 빠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오늘말씀의 제목은
예수께서 오늘말씀에 나오는 귀신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결국 이 귀신은
예수의 말씀대로 그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은 결국 많은 돼지 떼에게로 들어갔고
그 결과 자기는 물론이고 2천 마리나 되는 돼지가
모두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의 특징이라고 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자제력을 모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귀신이 자제력을 모르니까
이 귀신이 들린 사람도 자제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말씀을 보면 이 사람이 자제력을 잃어버린 증거를
여러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이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무덤은 아무리 잘 꾸며 놓아도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 무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분명히 살아서 숨을 쉬는 사람이면서도
이런 무덤 사이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살아 있기는 하지만 생명의 세계와는 관계가 끊어진 채로
죽음의 세계에만 거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어서 속히 무덤 사이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귀신에 사로잡힌 이 사람은
자기가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어떻습니까?
물론 겉으로는 화려한 문명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문명의 속은 어떻습니까?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을 가리켜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한데 속은 시체가 썩는 무덤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화려한 겉모습 안에는
시신이 썩는 악취가 나는 무덤과 같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역시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이 사람과 똑같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3절을 보면 귀신에 사로잡힌 이 사람은
아무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건져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도 스스로 무덤에서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를 무덤에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아무도 이 사람을 다스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쇠사슬로 매고 고랑을 채워도 그 쇠사슬과 고랑을 끊어버려서
아무도 이 사람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겠습니까?
분명히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때로는 애원도 하고 때로는 훈계도 하고 때로는 명령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과는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에게 남은 것은 자기주장과 자기고집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거추장스러운 쇠사슬과 고랑으로만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이런 모습 역시 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히 통신수단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데도
사람들 사이에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서로 간의 벽만 더 두꺼워지고 더 높아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이 이 사람 뿐만 아닙니다.
우리 역시 내 주장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무시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 5절을 보면 이 사람이 귀신에 사로잡혀서 하는 일은
늘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소리를 지른다는 말은
자기를 알아달라는 자기선전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자기 몸을 상하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폭력적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대상은 아무런 반응도 없는 무덤입니다.
나를 알아달라고 하면 동조하든지 반대하든지 반응이 있어야 되는데
무덤을 대상으로 소리를 지르니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 사람이
얼마나 자기생각으로 가득 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생각이 아닌 것은 폭력을 써서라도 배척하는 것이
이 사람의 행동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유대 지방을 다스리던
헤롯왕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형제는 물론이고
자기 아내와 자식과 어머니까지도 죽였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헤롯뿐만 아닙니다.
오늘 우리 역시 내 욕심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고 있습니까?
상대방의 의견을 아예 무시하고 내 주장만 강요하고
이를 위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말씀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은
결코 옛날이야기에만 나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 어쩌면 우리에게도
이 사람과 같은 모습이 너무나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무덤 사이에서 살면서도 그 헛된 것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아예 무시하고 내 생각만 최고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절망만 할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말씀에 나오는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은
온전하게 나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역시 설사 귀신들린 사람과 같은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믿음으로
그 어떤 죄악의 권세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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