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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7/21]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황현석 2019.07.23 11:05 조회 수 : 41

설교제목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본문말씀 누가복음 10:38-42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7-21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누가복음 10:38-42
 
오늘 말씀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중세 수도원에서는 이 두 자매를
수도 생활의 본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도원 벽화에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그린 그림이 많다고 합니다.
그럼 이들이 어떤 본이 되었겠습니까?
마리아는 기도하는 사람의 본이었습니다.
그래서 백합화와 같은 모습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반면에 마르다는 일하는 사람의 본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미와 같은 모습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세 수도원에서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기도와 노동’의 본으로 생각하고
기도와 노동은 함께 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기도 없는 노동도 문제고, 노동 없는 기도도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만 하면 태만하게 되고, 노동만 하면 교만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수도 생활을 위해서는
기도와 노동을 함께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마리아와 마르다 두 자매는 모두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또 중세 수도원에서도 참된 수도생활을 위해서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모습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말씀을 대할 때마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비교해서
예수를 접대하기 위해 수고한 마르다보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가 더 잘했다고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마르다처럼 열심히 봉사하는 것보다
마리아처럼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예수까지도 행동으로 하는 봉사보다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분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말씀을 이렇게 보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의 착각이고 오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장 오늘본문 앞에 나오는 말씀을 한 번 보십시오.
오늘말씀 앞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을 한 번 보십시오.
오늘말씀에서는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칭찬하신 예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에서는
말씀과 관계가 있는 레위인과 제사장보다는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을 더 칭찬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는 아름다운 봉사의 본을 보인 사람이 참 많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렙다의 홀로된 여인은 마지막으로 남은 한 끼의 음식을
허기진 엘리야에게 주었습니다.
그 결과로 극심한 가뭄 중에도 양식이 끊이지 않는 복을 누렸습니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아들이 없었던 수넴의 한 여인도
엘리사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고 그로 인해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빌립보에서 자주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여인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고
자기 집을 바울이 하는 선교활동의 근거지로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는 바울의 유럽 선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고
자신이 유럽에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르다 역시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예수를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마르다의 봉사를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성령의 은사라는 측면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르다가 하는 일도 분명히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에는 결코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은사, 덜 중요한 은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은사는 모두 좋은 것이고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이런 은사라는 측면에서도 마르다가 하는 봉사는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말씀을 대할 때는 마르다를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마르다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겠습니까?
40절을 보면 마르다에 대해서 뭐라고 했습니까?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누가복음 10:40).
바로 이것이 마르다의 문제였습니다.
“분주하다”, “바쁘다”는 말은
“여기 저기 끌려 다닌다”는 말에서 생겨났습니다.
예수를 섬기기 위한 마르다의 수고와 봉사는
그 누구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로 봐도 정말 중요한 은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일을 감당하는 마르다의 마음은
바쁘게 여기저기에 끌려 다니면서 분주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해도
마르다의 표정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흔히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하나님의 정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정원이 바쁘고 분주해서 어지럽게 망가져 있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머무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 마르다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을 때는
결코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정말 예수와 정답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면서 이런 마음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기 집에는 예수를 모셨지만
정작 자기 마음에는 예수께서 머무실 곳이 없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분명히 예수를 위한 것이었는데
마음이 망가지고 나니까 예수를 위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에만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모실 때는 정말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었는데
음식을 준비하면서 이런 마음이 다 사라지고
불평과 짜증만 가득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손님으로 청해 놓은 예수께도 뭐라고 했습니까?
동생 마리아가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것을
왜 그냥 보고만 있냐고 원망을 했습니다.
너무나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마르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누가복음 10:41).
예수께서는 결코 마르다의 수고와 봉사 자체를
문제 삼거나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수고와 봉사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는 마르다의 마음이었습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봉사하는 것은 분명히 귀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열심 때문에 마음이 분주해졌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혼자 수고하는 열심 때문에 동생을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까지도 왜 그냥 보고만 계시냐고 원망했습니다.
마르다에게 문제는 바로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럼 마리아는 어떻습니까?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마리아는
언니를 돕지 않고 아주 얌체같이 행동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가리켜서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가 택한 좋은 편이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지금 예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를 보면 예수의 말씀은
거의 언제나 하나님나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예수의 발아래 앉아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리아의 모습은 당시 유대의 풍습으로 보면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들을 때 취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전형적인 자세입니다.
그런데 예수 당시에는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여성을 제자로 삼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실제로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는 오늘날에도
손님이 오면 그 손님과 직접 상대하는 것은 대체로
남성들의 역할로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단지 손님을 접대하는 준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는 이런 생각이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오늘말씀을 보면
마르다 역시 예수를 초대할 때부터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고
여자인 자기는 그저 예수를 접대하는 일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결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남자 제자들과 똑 같이
예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마리아에게
언니를 도와주지 않은 것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아무도 이것을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을 한 번 비교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마르다는 예수를 모셔야 할 마음이
음식을 준비하는 분주함으로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혼자서 힘들게 수고하다보니 원망과 불평만 쌓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어떻습니까?
말씀을 들으며 참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를 집에만 모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에 모셨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분초를 다투면서 바쁘고 분주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무엇을 위한 바쁨이고
무엇을 위한 분주함이냐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발아래 앉아서 열심히 말씀을 듣는
정말 좋은 편을 택하였습니다.
우리의 분주함은 과연 정말 좋은 편을 택하기 위한 것입니까?
행여나 예수를 모시고도 음식에만 눈이 팔린 마르다처럼
헛되고 잘못된 분주함으로 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삶의 기쁨과 보람이 풍성하게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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