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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본문말씀 누가복음 12:13-21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8-04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12:13-21
 
복음서를 보면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목적으로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하고
율법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시비를 걸고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때마다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진리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말씀에도 어떤 사람이 예수를 찾아와서 아주 특별한 부탁을 했습니다.
자기 형에게 명령을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명령은 받은 유산을 자기와 나누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형과 유산을 나누는 문제로 예수를 찾아온 것을 생각해 보면
이 형제는 우애가 좋지 않았다고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형제와 반대로 아주 우애가 좋은 형제 이야기를
아주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혼자서 살고 동생은 딸린 식구가 여럿이었습니다.
어느 해에 형과 동생 둘 다 추수를 해서
자기들 밭에다 곡식단을 잔뜩 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형과 동생이 서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먼저 동생은 혼자 사는 형이 보기에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형이 모르게 자기 곡식단을
형네 밭으로 많이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형은 또 딸린 식구가 많은 동생이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형도 밤에 동생 몰래
자기 곡식단을 동생네 밭으로 많이 옮겨 놓았습니다.
서로가 이렇게 하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양쪽 다 곡식단의 분량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러 날을 이렇게 하다가 두 형제가 한 밤중에 서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특히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면서
이 두 형제의 우애가 담긴 밭을 성전을 세우는 터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형제와 비교하면 오늘말씀에 나오는 형제는
유산을 나누는 문제로 예수를 찾아오기까지 했으니까 참 못났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예수를 찾아왔지만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예수를 찾아온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이 사람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누가복음 12:14).
자기는 재판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물건을 나누는 재판장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산을 어떻게 나누라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누가복음 12:15).
이 형제의 문제는 유산을 얼마나 어떻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탐심을 물리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탐심을 물리치지 않으면
유산을 아무리 공평하게 나눈다고 해도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은 바로 탐심을 물리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탐심은 성경원어로 보면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필요해서 더 많이 가지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그야말로 분에 넘치도록 더 가지겠다는 마음을 탐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탐심은 자족할 줄 모르는 마음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디모데전서 6:6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디모데전서 6:6).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가졌든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내가 가진 것을 제일 좋은 것, 제일 귀한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삶이
은혜를 누리는 삶이요,
이렇게 살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복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또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도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또 탐심은 무엇 때문에 가져야 하는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조건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도 쓰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탐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유도 없이, 다 쓰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더 가지려고만 합니다.
 
또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내가 배부르고 내가 아쉬운 것이 없어도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배가 고프고 아쉬운 것이 있으면
결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탐심에는 이런 마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배가 고프든 말든 내만 배부르면 되고
다른 사람이야 아쉬운 것이 있든지 말든지
내만 아쉬운 것이 없으면 된다는 것이 탐심입니다.
 
또 탐심에는 윤리나 도덕도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는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고 했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쓸 때뿐만 아니라 벌 때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벌 때도 바르게 벌어야 하고 쓸 때도 바르게 써야 합니다.
하지만 탐심에 사로잡히면 그렇지가 못해서
벌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쓸 때도 내 마음대로 쓰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탐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나눔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무조건 가지려고만 합니다.
 
물론 탐심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탐심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탐심에 사로잡히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리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너무나 쉽게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탐심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탐심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탐심의 노예가 되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많이 가지려고만 합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많이 가지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설사 문제가 있다고 해도 가진 것이 많으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생명까지도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말씀 가운데 15절을 보십시오.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신 다음에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15).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생명과 직접 관계있는 것이 건강이고 수명일 것입니다.
우리 생각대로 하면 가진 것이 많을수록 건강해야 합니다.
또 많이 가질수록 오래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진 것이 없어도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가진 것이 많아도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수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은 인간의 수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가진 것이 부족해도 오래 살 수 있고
가진 것이 많아도 오래 살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말씀대로
생명과 소유의 많고 적음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사실 가진다는 말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땅이나 건물을 가진다는 말은
등기 문서가 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땅과 건물이 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정말 내가 가졌다고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 정말 내가 가졌다고 하기 위해서는 직접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도 운전할 줄 모르면
그 자동차는 내가 가졌다고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피아노를 가지고 있어도 칠 줄 모르면
그 피아노는 내가 가졌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가졌다고 하는 말에는 기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에는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해서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고
또 가지는 것이 점점 더 커지고 많아져서 기뻐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지나치게 커지고 많아지면
기뻐하기보다 빼앗기고 잃어버릴 것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것 만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소중하게 아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랑이 지나쳐서 교만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소중하게 아끼는 것이 지나쳐서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떠받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진 것 때문에 교만하게 되고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되면
이것 역시 내가 가졌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사람의 생명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말씀을 보면 16절부터
예수께서는 우리가 잘 아는 비유를 소개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자기 밭에서 수확을 거두게 되었는데
수확이 너무나 많아서 쌓아둘 곳이 마땅찮았습니다.
그야말로 주체를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지금 가지고 있는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지어서 거기에 쌓아두고자 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19절을 보면 이 사람은 이제 곳간도 새로 짓고
거기에 곡식도 가득 쌓아두었으니까
이 곡식을 가지고
편하게 쉬면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볼 때는 얼마나 부러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지만 예수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가리켜서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밤이라도 그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이 사람의 계획은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 부요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사람은
그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이 사람처럼
그 많은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부터도 예수의 말씀에 나오는
풍성한 수확을 거둔 사람이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또 우리 역시 이 사람처럼 창고를 늘려서 수확을 쌓아두고
좀 편히 쉬면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부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탐심을 버리는 것,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사는 것은
알면서도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이
바로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사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 어려워도 탐심을 버리는 가운데,
하나님께 부요한 삶에 힘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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