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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본문말씀 미가 4:3-5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8-11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미가 4:3-5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선물에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는 평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욕심과 죄악 때문에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도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번 주 목요일은 광복 74주년을 맞이하는 광복절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광복절 바로 전 주일을
광복절 감사주일로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많은 교회가 광복절 바로 전 주일을
광복절 감사주일 대신 평화통일기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광복절은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하지만
원래 하나였던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참된 광복을 위해서는
남과 북이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광복절 전 주일을 평화통일기도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작년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서
희망적인 조짐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두 정상이 만나고 때로는 세 정상이 만나서 찍은
사진 한 장만 가지고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
여전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평화와 통일을 통해서 참된 광복을 이루기까지는
그만큼 멀고 험하기도 하고 많은 고비도 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사람과 사람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또 이런 믿음으로 우리는 광복절을 앞두고
우리 민족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선물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통일기도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평화에 대한 말씀이 많습니다.
오늘 미가서 말씀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가라는 이름에는 “여호와 같으신 분이 누구입니까”라고 해서
하나님 같은 분은 없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미가는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가는 배운 것이 많은 그 누구보다도 분별력이 뛰어났습니다.
또 미가는 늘 백성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미가는 시골 마을(모레셋)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지난날 이스라엘이 자주 싸웠던 블레셋의 성읍과 가까운 지역으로서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어릴 때부터
블레셋의 침략도 자주 겪었고 늘 무장한 군대를 보고 자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소망도 어릴 때부터 아주 간절했습니다.
 
오늘말씀도 시작부터 평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미가 4:3).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민족을 심판하시면서 평화가 이루어지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전쟁을 위한 무기가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을 쳐서 쟁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서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과 같은 내용이 이사야 2:4에도 똑같이 나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
시간적으로는 이사야 예언자가 먼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사야 예언자에게 주셨던 말씀을
미가 예언자에게도 똑같이 주셨겠습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평화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평화를 위해서
계속 바라고 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적대적이었던 것도 닮았습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 수많은 전쟁을 벌였습니다.
평화롭게 지낸 시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아주 규모가 컸던 두 번의 전쟁을 살펴보자면
우선은 역대하 13장에 나오는 스마라임 전투입니다.
남 왕국 군대는 40만 명이고 북 왕국의 군대는 8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20만 명의 군사가 충돌한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역대하 13:17-18을 보십시오.
“아비야와 그의 백성이 크게 무찌르니
이스라엘이 택한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엎드러진 자들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겼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역대하 13:17-18).
절반 밖에 되지 않았던 남 왕국이 전쟁에서 이기고
북 왕국의 군사는 50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이 전쟁은 북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또 한 번의 전쟁은 열왕기하 14장에 나오는 벧세메스 전투였습니다.
말씀을 보면 남 왕국은 이방 민족(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교만해져서 우상을 섬기고 북 왕국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 결과도 열왕기하 14:13-14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왕하 14:13-14).
이 전쟁 바로 전에
이방 민족을 물리치고 교만할 정도로 당당했던 남 왕국의 왕이
이번에는 포로로 잡히고 예루살렘 성벽까지 헐리고 말았습니다.
 
또 남 왕국과 북 왕국은 자기들끼리만 싸운 것이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에게도 끊임없이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나라가 갈라지고 나서 209년 만에
북 왕국이 먼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남 왕국도 그 후로 136년이 지나고 나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남 왕국 북 왕국 모두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정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평화를 늘 정의와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편 85:10을 보십시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시편 85:10).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진리가 함께하듯이
정의와 평화도 입을 맞추는 것처럼 가까운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라도 정의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그야말로 전쟁만 준비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힘과 무기가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고,
정의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백성에게는 결코 평화를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군사적으로 약하다고 하더라도
정의로운 백성에게 승리와 평화를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미가서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오늘말씀 앞과 뒤로
정의에 대한 말씀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6:8을 보십시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내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구하시는 것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정의를 함께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간절하게 바란다고 해도
평화를 누리기는 어렵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만큼 불의를 멀리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일에 힘쓰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부터 평화와 정의를 이루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성 프란시스가 드린 “평화의 기도”를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
 
이 기도문처럼 우리 자신부터
마음에 사랑과 용서, 일치와 믿음, 진리의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자세로 평화를 이루는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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