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어
NEWS
http://www.songcheon.net/sc_home/xe/files/attach/images/37583/5c9301f7269e30f1b60e6bf0345865c7.png
설교말씀
설교제목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본문말씀 누가복음 12:49-56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8-18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누가복음 12:49-56
 
일기예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들이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잘 맞는 것 같다가도
어떤 경우에는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일기예보가
스마트 폰이나 유선방송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우리가 사는 읍, 면, 동 지역에 대해서까지 세부적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김천과 구미의 경계지역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스마트 폰을 보면
대부분은 아포 지역의 날씨예보를 보게 되지만
때로는 구미 지역의 날씨예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좌우간 우리는 이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날씨까지 미리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날씨를 예측하는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을 때도
날씨에 대해서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속담이 전해져 왔습니다.
아마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를 하다보니까
날씨에 대한 정보가 그만큼 많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녁에 노을이 지면 그 다음 날은 대체로 맑다고 합니다.
또 아침에 안개가 끼면 그날도 맑은 날이라고 합니다.
풀잎에 이슬이 맺히면 그날도 날씨가 좋은데
오후가 되어도 이슬이 마르지 않으면
그 다음 날은 대체로 비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날씨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말씀 가운데 54-55절을 보면 그 당시에도
날씨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 있었습니다.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누가복음 12:54).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누가복음 12:55).
또 이런 말들에 대해서 예수께서도 “과연 그러하니라”고 하셔서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하신 말씀입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누가복음 12:56).
말 그대로 날씨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도 많고 아는 것도 많으면서
시대에 대해서는 왜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을 외식하는 자, 위선자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이 말씀은 오늘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드리는 것처럼 날씨 하나만 해도
이제는 읍, 면, 동단위로까지 예보를 하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그만큼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발달한 과학기술 때문에
위험이나 불안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쉬운 예로 자동차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우리는 자동차 덕분에 아주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동차가 없었을 때는
교통사고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교통사고는 누구나 조심해야 할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편리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고
위험한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까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는 예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렇게 아는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으면서
정말 알아야 되고 알고 싶어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편리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고
위험한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어느 누가 이 말씀 앞에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오늘말씀은 처음부터 아주 부담스러운 내용입니다.
49절 첫 부분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누가복음 12:49).
새 번역에서는 이 말씀을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고 했습니다.
물론 말씀이 여기서 끝났다면 아주 좋게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불은 얼마든지 좋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120명의 처음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구절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이 처음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도 불은 분명히 좋게 사용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말씀에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는 예수의 말씀은
결코 우리에게 좋은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실제로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누가복음 12:50).
이 말씀도 새 번역으로 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누가복음 12:50).
사실 예수께서는 이미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말씀하시는 받아야 할 세례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도 별로 문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하신 말씀입니다.
51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누가복음 12:51).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평화의 주님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도 당장 1장에서부터
아기 예수를 가리켜서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분이라고 했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한복음 20:21).
예수께서는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도 평화의 주님으로 오셨고
부활하신 다음에도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평화가 있기를 바라는 인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분열과 갈등이 있는 곳에 평화와 일치를 이루시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에서는 정반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분쟁하게 하려고, 분열을 일으키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더구나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누구와 누구 사이가
분쟁하게 되고 분열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머니와 딸 사이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그야말로 가장 평화롭고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사이가
분쟁하게 되고 분열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평화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왜 오늘말씀에서는 분쟁과 분열의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셨겠습니까?
그것도 가장 평화롭고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사이가
왜 서로 분쟁하게 되고 분열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잇습니다.
우선은 여기서 이야기하는 가족을
민족으로 확대해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족 사이의 분쟁과 분열은
민족과 민족 사이의 분쟁과 분열을 가리키는 것이 됩니다.
실제로 인간 세계에서 민족과 민족 사이의 분쟁과 분열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을 민족으로 보면 이 말씀은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또 사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아무리 가까워도 시간적으로 몇 십 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족 사이의 분쟁과 분열은
세대 간의 갈등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족이 모였을 때는 가급적이면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가까워도 정치적인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 때문에 가족이 분쟁하고 분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희생과 섬김을 소중히 여기시는데
세상은 여전히 힘과 권력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여기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시고
가족 사이조차 분쟁하게 하고 분열하게 하시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같은 말씀이 나오는 마태복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4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복음 10:34).
보시는 대로 마태복음에서는
분열이라는 말 대신 검이라고 해서 칼을 주러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예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태복음 10:37).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한마디로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가족 이기주의가 무슨 말입니까?
자기만 알고 자기만 사랑하는 것이 이기심이라면
자기 가족만 알고 자기 가족만 사랑하는 것이 가족이기주의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나와 내 가족을 사랑하시고 소중히 여기시는 만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소중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역시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내 가족은
작은 상처에도 큰일 날 것처럼 난리를 치면서도
다른 사람의 큰 아픔에 대해서는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한다면
이런 것이 바로 가족 이기주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런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서지 못하면
예수보다 자기와 자기 가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예수를 제대로 믿고 따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시대의 징조에까지 연결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시대의 징조는
역사적으로 보면 30-40년 뒤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이 로마 군대의 침략으로
완전히 멸망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예루살렘 성이 침략을 받을 때가 많았지만
로마 군대의 침략으로 가장 비참하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불과 30-40년 뒤면 일어날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말씀은 지금이라도 시대의 징조를 제대로 분별해서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평화의 주님으로,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평화를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평화도 힘과 권력으로 이루고자 했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으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힘과 권력을 최고로 여기고 있습니다.
희생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때도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은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예수의 말씀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현실도 예수의 말씀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더욱 깨어있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번호 제목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 조회 수
526 [11/10]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누가복음 20:34-40  황현석 목사  2019-11-10  10
525 [11/03]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누가복음 19:1-10  황현석 목사  2019-11-03  33
524 [10/27]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 누가복음 18:9-14  황현석 목사  2019-10-27  33
523 [10/20]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누가복음 18:1-8  황현석 목사  2019-10-20  33
522 [10/13]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1-19  황현석 목사  2019-10-13  23
521 [10/06] 믿음을 더하소서 누가복음 17:5-10  황현석 목사  2019-10-06  45
520 [09/29] 앞날을 준비하는 삶 누가복음 16:19-31  황현석 목사  2019-09-29  52
519 [09/22]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일하는 남신도 고린도전서 16:15-18  황현석 목사  2019-09-22  21
518 [09/15] 제자가 되는 길 누가복음 14:25-33  황현석 목사  2019-09-15  46
517 [09/08]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히브리서 11:23-31  박재민 목사  2019-09-08  34
516 [09/01] 끝자리에 앉으라 누가복음 14:7-14  황현석 목사  2019-09-01  84
515 [08/25]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누가복음 13:10-17  황현석 목사  2019-08-25  44
» [08/18]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누가복음 12:49-56  황현석 목사  2019-08-18  82
513 [08/11]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미가 4:3-5  황현석 목사  2019-08-11  44
512 [08/04]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12:13-21  황현석 목사  2019-08-04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