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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09/01] 끝자리에 앉으라

황현석 2019.09.04 09:25 조회 수 : 46

설교제목 끝자리에 앉으라 
본문말씀 누가복음 14:7-14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9-01 
끝자리에 앉으라
 
누가복음 14:7-14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상이 많이 각박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서
손해가 되는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무슨 일이든지 이유와 조건부터 따질 때가 많습니다.
해야 되면 왜 해야 되는지를 따지고
또 하면 이익과 손해 가운데 어느 쪽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게 됩니다.
하지 않아야 될 때도 마찬가지로 왜 하지 않아야 되는지를 따지고
이때도 이익과 손해 가운데 어느 쪽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타산적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전에는 그래도 공부 자체를 위한 공부,
학문을 위한 공부도 중요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공부도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쪽만 중요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은 쪽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문사철의 위기라고 해서 문학, 역사, 철학 같은 분야는
학생들이 지원을 하지 않는 분야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합리적이라는 말은 아주 좋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나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지 않을 때 우리는 합리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합리적이라는 말도
계산으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경우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고받는 일에 균형이 맞을 때 합리적이라고 합니다.
주었으면 받아야 하고 수고한 만큼 대가가 있어야 합리적이라고 합니다.
또 주지 않았으면 받지 않아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베드로도 예수와의 관계에서
주고받는데 아주 민감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의 순서가 되었을 때 베드로가 처음에 어떤 태도를 취했습니까?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요한복음 13:6).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요한복음 13:8).
제자인 자기는 예수의 발을 씻겨드리는 것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예수 앞에 자기 발을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특히 여기 “절대로” 하는 말은
밑에 보면 “영원히”라는 뜻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 발은 영원히 씻기지 못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물론 좋게 보면 베드로가 그만큼 겸손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주고 받는 것으로 보면 무슨 말입니까?
주지 않았으니까 받지도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3:8).
베드로는 예수를 씻겨주지 않았더라도
예수는 베드로를 씻겨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는 예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으로 하면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는 자기가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주지 않았어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는 예수와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께서 주시는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은혜는 합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합리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의인이 복을 받는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인이 복을 받는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자격이 있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도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격이 없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은혜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믿은 만큼 보상을 받으려고 하고
보상을 받지 못하면 믿음 자체를 별로 소용이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도 열심히 기도했는데 원하는 대로 응답받지 못하면
기도 자체를 필요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봉사도 대가가 없으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은혜도 주고받는 것으로,
이익과 손해로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도 주는 즉시 바로 받아야 하고
계산도 바로 그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보상도 바로 이루어져야 하고
기도의 응답고 지체되지 말아야 하고
수고의 대가도 바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말씀을 보십시오.
1절을 보면 지금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아서
음식을 드시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바리새인 중에서도 지도자로서
예수 외에도 여러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우선 1절을 보면 그들은 예수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7절을 보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으면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낮은 자리, 아예 제일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또 자기를 비롯해서 사람들을 초청한 바리새인에게도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을 초청할 때는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가진 것이 많은 이웃을 초청하지 말고
전혀 갚을 수 없는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초청하라고,
그래야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귀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로마서 12:13)고 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좋다고 해도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대접하는 손님에 대한 기준이 있습니다.
우선은 다 같은 손님이라도
기왕이면 잘 아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아무리 잘 알고 좋아해도 가진 것이 없고 신분이 낮은 사람보다는
가급적이면 가진 것이 많고 신분이 높은 사람을 대접하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 자신도 높아지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 주고받는 것이나 이익과 손해를 계산했을 때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주어야 받을 수 있고
신분이 낮은 사람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대접하고 도와준 것을
자랑하고 과시해서 인정받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랑하고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어서 대접하고 도와주는 것은
결국 위선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리고로 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고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이 사람을 그냥 지나친 이유가
이 사람이
인적이 없는 여리고로 가는 길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구해주어도 알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강도 만난 사람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예루살렘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제사장과 레위인 두 사람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봉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면서 사람들에게 과시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아무리 손님을 대접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귀한 일이라도
보답이나 이익을 생각하고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대접하고 도와주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손님을 대접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이 사람이 왜 예수를 자기 집에 초대했는지
분명한 이유는 말씀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비추어보면
이 사람 역시 예수께 대가와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대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청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일과 행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가나 보상부터 바라거나
나에게 돌아올 이익부터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금식할 때도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금식에 대한 표시를 내서 인정부터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금식에 대한 표시를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구제할 때도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드러내놓고 할 것이 아니라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보상과 대가부터 바라고 이익부터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과 행동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행하여야 하겠습니까?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부터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으로 해서도 안되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부터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오늘말씀대로 하면
받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받은 마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아직 받지 않았지만
이미 받은 줄로 여기는 마음으로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아무런 보상이나 바람도 없이
오직 이웃의 필요를 살피는 마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야말로 이웃의 필요에 끌리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를 사랑하기에 주고, 그를 존경하기에 수고하고,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를 위해서 나를 희생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오늘말씀 가운데 13-14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4:13-14).
우리의 모든 일과 행동이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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