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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일하는 남신도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6:15-18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9-22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일하는 남신도
 
고린도전서 16:15-18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인 오늘말씀에서는
자기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을 알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생소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오늘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들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특별히 18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바울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원하게 한다는 말은 성경원어로 보면
쉬게 한다, 원기를 회복시킨다,
위로를 준다, 새 힘을 준다, 용기를 준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에게는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에게
위로를 주고 새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념주일로 지키는 남신도들을 비롯해서
우리 역시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새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고린도전서 16:15).
스데바나는 집안 전체가 아가야라는 지방에서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믿음의 첫 열매였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다음의 모습입니다.
집안 사람들 모두 성도 섬기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새 번역에서는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친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성도들을 섬기라고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자원해서 섬기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똑같은 일에도 섬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생각해 보십시오.
섬김이 없으면 많이 알고 배우는 것 자체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많이 알고 배운 것을 섬김과 연결하면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많이 알고 배운 것으로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을 섬기게 됩니다.
가진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이 없으면 많이 가진 것 자체로 그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많이 가진 것을 섬김과 연결하면
많이 가진 것으로 가지지 못한 사람을 섬기게 됩니다.
힘과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이 없으면 자기가 가진 힘과 권력을 과시만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힘과 권력도 섬김과 연결하면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힘과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말씀대로 하면
이렇게 무엇이든지 자기가 가진 것으로 섬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세상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도 자기가 세상에 오신 목적을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0:45을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도 섬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하신 일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말씀대로 하면 예수께서 하신 일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병을 고치실 때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와 나병환자처럼
오늘의 의술로도 고치기 힘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또 낙심한 사람이 용기를 갖게 해 주시고
소외된 사람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시고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예수의 섬김을 본받을 때
이웃과 세상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고린도전서 16:17).
새 번역으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만나지 못해서 생긴 아쉬움을,
이 사람들이 채워주었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6:17).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만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는데
바로 이 세 사람,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덕분에
아쉬움을 채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세상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쉽고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 우리 생각에는
아쉽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쉽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데 인색한 만남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아쉽고 부족한 것을 보면 채워주기보다
지적부터 하고 비판부터 하는 만남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만남은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시원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만남은 아쉽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만남입니다.
 
실제로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더 가지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세상을 시원하게 할 수 없습니다.
또 준 것이 있으면 꼭 받아야 하고
받은 만큼만 주고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세상을 시원하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세상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아무 것도 받지 않았지만 기쁨으로 주는 사람입니다.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자면
받는 것이 많아야 이익이고 주기만 해서는 손해일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받지 않고 주기만 해도 얼마든지 풍성할 수 있습니다.
또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을 높이면 내가 낮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세계에서는
다른 사람을 높이면 나도 함께 높아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6절을 보십시오.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고린도전서 16:16).
이 말씀도 새 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런 사람들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또 그들과 더불어 일하며
함께 수고하는 각 사람에게 순종하십시오”(고린도전서 16:16).
바울은 누구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까?
여기 이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은
바로 15절에 나오는 스데바나의 집안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과 또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또 18절에서는 알아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5절에서 보는 대로
그들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시원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인정을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거꾸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세상을 시원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고
위로와 새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
세상을 시원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맡은 일에 대해서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달란트 비유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태복음 25:21).
솔로몬도 잠언에서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언 25:13).
사도 바울과 예수와 솔로몬 모두
공통적으로 충성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맡겨진 일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충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충성의 충자를 한자로 보십시오.
가운데 중자 밑에 마음 심자가 함께 어우러진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충성은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초점을 잘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충성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중심을 잘 잡고
하나님께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도 안식과 평안을 주는 사람,
위로와 새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
세상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의 섬김을 본받고
아쉽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데 힘쓰는 가운데
맡겨진 일에 대해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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