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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10/06] 믿음을 더하소서

황현석 2019.10.08 11:04 조회 수 : 45

설교제목 믿음을 더하소서 
본문말씀 누가복음 17:5-10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10-06 
믿음을 더하소서
 
누가복음 17:5-10
 
예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 백성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면에서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식민지 국가에서는 당연히 독립운동이 많았습니다.
우리 역시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을 비롯해서 독립운동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지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많은 독립운동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답게
자기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바라는 마음도 간절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야는 그리스도와 같은 말로 구주, 구세주, 해방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당연히 예수의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는 메시야, 구주,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좌우간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 힘으로는 독립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자기들을 구원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도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로 믿고 따랐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수없이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또 하시는 말씀도 아주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고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예수를 자기들을 로마제국에서 해방시켜줄 메시야로
믿고 따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자기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를
힘과 권력을 가진 메시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나면
자기들 가운데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가지고 다투었습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를 믿고 따르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많고 놀랄 때도 많았습니다.
특별히 오늘말씀을 보면
그들은 예수의 믿음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면 오늘 우리가 생각해도
예수께서는 아주 대단한 믿음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있은 지 4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이렇게 큰소리로 부르셨는데도
나사로가 나오지 않으면 얼마나 난처하고 창피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고 계셨더라면
나사로를 큰소리로 부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나사로야 나오라고 큰 소리로 부르셨으니까
예수의 믿음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제자들도 이렇게 특별한 예수의 믿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과연 무엇을 믿으셨기에
이렇게 놀라운 믿음을 가지실 수 있었겠습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예수께서는 복음의 능력을 믿으셨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으셨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거센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서도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도
예수께서 믿으신 복음의 능력, 말씀의 능력,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믿음은 그야말로 능치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말씀을 보면
제자들도 예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믿음도 예수의 믿음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믿음을 더해 달라고 한 것을 보면
제자들은 자기들에게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자기들의 믿음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를 믿고 따르면서도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예수를 힘과 권력을 가진 메시야로 생각하고
서로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자리다툼을 했던 일입니다.
또 제자들은 믿음이
자기들의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누가복음 17:6).
제자들은 자기들의 믿음이 부족하니까 믿음을 더해 달라고 해서
믿음을 양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믿음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 얼마나 크고 많으냐가 아니라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에서 성장이나 성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성장과 성숙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모래알보다도 작은 씨앗입니다.
하지만 겨자씨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기왕이면 더 크고 더 많은 믿음을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생명이 있고 살아 있기만 하면
모래 한 알보다 작은 믿음이라도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크고 많아도 생명이 없으면, 죽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도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힘과 능력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종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종은 아무리 수고해도 주인에게 위로나 칭찬을 받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종은 열심히 수고를 하고도
자기는 무익한 종, 쓸모없는 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예수께서
종은 아주 매정하게 대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결코 종은 매정하게 대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예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믿음을 더해 달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도 믿음과 관계된 말씀입니다.
 
종이 어떤 사람입니까?
종에게는 자기 것이 없습니다.
물질은 물론이고 가족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자기 생명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도 바로 이런 종과 같은 모습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 앞에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입니다.
또 종은 충성된 종일수록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절대적으로 의지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크고 더 많은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기왕이면
내 믿음이 더 큰 믿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크게 자라기 위해서도
생명이 있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생명이 있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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