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어
NEWS
http://www.songcheon.net/sc_home/xe/files/attach/images/37583/5c9301f7269e30f1b60e6bf0345865c7.png
설교말씀

[10/13]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황현석 2019.10.18 09:14 조회 수 : 25

설교제목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본문말씀 누가복음 17:11-19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10-13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1-19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자비와 긍휼,
여기에 대한 우리의 찬양과 경배, 봉사와 헌신.
이런 것이 다 믿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중에는 감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쁘고 즐거울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도 감사해야 하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믿음이 신실한 사람이라도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 감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보에 소개한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 내용을 보십시오.
언젠가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오늘 다시 한 번 소개를 합니다.
이 감사는 제일 밑에 밝힌 대로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의 장례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드린 것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은 여순 반란 사건 때
폭도들에게 한꺼번에 아주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으로서는 정말 너무나 비통한 일이었고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손양원 목사님은 9가지나 되는 감사의 조건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주보에 소개한 9가지 감사의 조건을 보십시오.
하나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감사입니다.
 
또 손 목사님은 말로만 감사한 것이라 실제 삶으로도 보여주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손 목사님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폭도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또 나병환자들을 온몸으로 품고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기에 손양원 목사님을 사람들은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누구나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처럼 감사하기 어려운 가운데 드리는 감사야말로
최고의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말씀은 예수께서 10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내용입니다.
이 가운데 중심이 되는 인물은 바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삶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이 사람의 삶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불평과 원망이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사람은 나병환자이기 전에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유대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면서도 서로를 원수처럼 대하는 관계였습니다.
특히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늘 무시했습니다.
아예 불결한 짐승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도 나병에 걸리기 전부터
유대 사람들에게 짐승취급을 받았으니까
이것만 해도 너무나 원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여기에 더해서 나병까지 걸렸습니다.
나병은 의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완전하게 고치기는 어려운 질병입니다.
그러니까 당시로서는 당연히 고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나병환자에 대해서
몇 가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나병환자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살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
“아무런 소망도 없이 너무나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나병이라는 질병을
저주받은 병, 하늘이 내린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병환자에 대해서는
아무리 불쌍하게 보여도 동정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얼마나 죄가 많았으면 나병에 걸리게 되었을까’,
‘조상이나 부모가 죄를 지었든지, 본인이 죄를 지었든지
좌우간 죄에 대해서 천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병에 대해서는 전혀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 나병환자는 완전히 나을 때까지
정상적인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없었습니다.
나병은 고칠 수 없으니까 한 번 걸리면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같이 지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족관계도 끊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동네 밖으로 쫓겨나서
동굴 같은 곳에서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음식이라도 갖다 주면 그것을 먹고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병환자들은 유대인이지만
하나님의 성전에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설사 증세가 가벼워서 다른 사람이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에도
나병환자는 자기가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밝혀야 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이렇게 철저하게 버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말씀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이 바로 그런 처지였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원망과 불평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또 다른 단계가 찾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와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람은 예수께도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병환자들과 함께 멀리서 큰소리로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들의 소망대로 고침을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치유의 기적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런데 14절을 보십시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누가복음 17:14).
다른 사람을 고쳐주실 때와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직접 손으로 만져서 고쳐주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말씀을 통해서 고쳐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에서는 예수와 나병환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또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다른 때는 대부분 바로 그 자리에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4절을 보면 나병환자들이 언제 깨끗하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된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에게로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나병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아무 것도 해 주시지 않고
무조건 제사장들에게 가라고 하셨을 때
얼마든지 서운한 생각이 들 수도 있었습니다.
나병이 낫지 않아서 제사장들에게로 갈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제사장에게 간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제사장은 나병환자를 점검하고 진단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나병이 걸린 사람을 확인해서 쫓아내기도 했고
어쩌다 나병이 나았을 경우에는 최종확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제사장이 나았다고 해야
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병환자가 제사장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나병이 나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사장에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말씀에 나오는 나병환자들은 전혀 낫지 않았는데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무리 예수의 말씀이라고 해도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고 쉽지 않은 믿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병이 그대로인데도 예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전적으로 믿거나 순종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나병이 나은 것은 나병환자들이 온전히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치유와 회복,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면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께서 낫게 하신 나병환자는 10명이었지만
15-16절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은 다른 아홉 사람과 차이가 있습니다.
오직 사마리아 사람만 나은 몸으로 다시 예수를 찾아와서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누가복음 17:17).
예수께서 다른 아홉을 찾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병이 나은 것은 분명히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감사가 없으면
나병이 나았다고 해도 결코 참된 축복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다른 아홉을 찾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을 보십시오.
자기의 몸이 나은 것을 기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를 낫게 하신 예수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나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병이라는 말 대신 삶 전체를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삶을 나아지게 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결코 참된 복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축복은 좋아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수께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은 몸을 가지고 찾아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7:19).
그는 예수를 만나서 나병만 나은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가운데 구원받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원망과 불평만 가득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결코 이런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복된 삶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과 삶이 이것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믿음과 삶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우리의 믿음과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번호 제목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 조회 수
527 [11/17]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5-17  황현석 목사  2019-11-17  5
526 [11/10]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누가복음 20:34-40  황현석 목사  2019-11-10  19
525 [11/03]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누가복음 19:1-10  황현석 목사  2019-11-03  36
524 [10/27]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 누가복음 18:9-14  황현석 목사  2019-10-27  35
523 [10/20]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누가복음 18:1-8  황현석 목사  2019-10-20  34
» [10/13]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1-19  황현석 목사  2019-10-13  25
521 [10/06] 믿음을 더하소서 누가복음 17:5-10  황현석 목사  2019-10-06  45
520 [09/29] 앞날을 준비하는 삶 누가복음 16:19-31  황현석 목사  2019-09-29  52
519 [09/22]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일하는 남신도 고린도전서 16:15-18  황현석 목사  2019-09-22  21
518 [09/15] 제자가 되는 길 누가복음 14:25-33  황현석 목사  2019-09-15  46
517 [09/08]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히브리서 11:23-31  박재민 목사  2019-09-08  34
516 [09/01] 끝자리에 앉으라 누가복음 14:7-14  황현석 목사  2019-09-01  84
515 [08/25]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누가복음 13:10-17  황현석 목사  2019-08-25  45
514 [08/18]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누가복음 12:49-56  황현석 목사  2019-08-18  84
513 [08/11]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미가 4:3-5  황현석 목사  2019-08-11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