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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10/27]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

황현석 2019.10.29 10:06 조회 수 : 35

설교제목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 
본문말씀 누가복음 18:9-14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10-27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
 
누가복음 18:9-14
 
우리 인간이 행하는 죄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도 아주 오래 전부터 7대 대죄라고 해서
인간의 가장 큰 죄를 일곱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교만, 질투, 분노, 탐심, 탐식, 나태, 정욕.
우리 인간이 행하는 모든 죄는
결국 이 일곱 가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 일곱 가지를 7대 대죄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7대 대죄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그만큼 큰 죄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믿음의 역사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중에는
교만에 대해서 경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거스틴부터가 교만을 가리켜서
인간이 가장 빠지기 쉽고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도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악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말씀에서도 9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교만한 사람에게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못 되었다고 하는 사람,
하나님까지도 자기 소유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의 비유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당대에 존경을 받던 종교인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바리새인으로서
종교적인 열심과 헌신을 갖고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지도자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던 세리였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제국에 바치는 매국노라고
비난받던 사람입니다.
또 율법도 어길 수밖에 없는 자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기도를 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특별히 예수께서는
이들이 기도하는 자세와 기도하는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소개하셨습니다.
먼저 기도하는 자세나 태도부터 보십시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했습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바리새’라는 말부터가 ‘구별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은 기도하는 모습에서부터
자기를 다른 사람과 구별된 사람,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겼습니다.
물론 13절을 보면 세리도 멀리 서서 자기를 구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세리가 자기를 구별하는 이유는 바리새인과 정반대였습니다.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는 다른 사람과 함께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구별한 것입니다.
실제로 세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면서
두렵고 떨리는 모습으로 기도드렸습니다.
기도하는 태도를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 모두 자기를 다른 사람과 구별해서 기도했지만
기도하는 마음가짐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그럼 바리새인과 세리는 무슨 기도를 했습니까?
우선 11-12절을 보면 바리새인이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또 자기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우선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만큼 그의 삶에는 감사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의 기도는 예수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리새인의 감사는 하나님을 높이는 감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를 자랑하는 감사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리새인이 하는 감사를 보십시오.
먼저 자기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자기는 토색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는 불의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바리새인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십계명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잘 지켜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같이 자기가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인물인지를
하나하나 하나님 앞에서 알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바리새인은 분명히 믿음이 신실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8:14).
예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실보다
그 행실을 하게 된 마음의 동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무슨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느냐는 것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은
결코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겸손히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기도일 뿐이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경건한 사람이고
맡은 직분도 얼마나 잘 감당하는 사람인가를
사람들은 물론이고 하나님도 알아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 인간의 모습에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바로 교만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대단한 것 같아도
하나님 보실 때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교만이 지나쳐서 창조주 하나님과 똑같아지려고 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능가하려고 하면
아무리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라도
싫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이 바로 그렇게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했습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도 독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은 대수롭지 않고 잘못된 것이고
자기 믿음만 옳고 자기 믿음만 최고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리새인의 기도를 보십시오.
자기가 한 것만 드러낼 뿐입니다.
토색하지 않은 것도 자신이고
불의하지 않은 것도 자신이고
간음하지 않은 것도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또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한 것도 자신이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가 한 것만 과시하다 보니까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를 인정하시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세리가 드린 기도를 한 번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18:13)
자기가 한 일을 드러내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자기는 죄인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습니다.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자기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지 않고 용서하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리의 기도는 중심이 세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해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삶 전체가
세리처럼 우리는 낮아지고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는
믿음과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부족한 죄인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2주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을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진리는 오직 말씀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또 오직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말입니다.
이와 대조가 되는 말이 이행칭의입니다.
이신칭의는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말입니다.
이행칭의는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행실이 중요합니다.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고 행실로 의롭다고 인정받으려고 하면
바리새인처럼 우리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인간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를 죄인으로 생각하는 의인과
자기를 의인으로 생각하는 죄인!
이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두 종류 밖에 안되지만
이런 분류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바리새인처럼
자기를 의인으로 생각하는 죄인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리처럼 자기를 죄인으로 고백하는 의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거룩하고 선한 삶으로
우리의 삶에 충실한 내용을 담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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