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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본문말씀 누가복음 19:1-10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11-03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누가복음 19:1-10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가진 것을 가지고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물질만능이라는 말처럼 소유나 재물이 많으면
다른 것도 저절로 다 가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조금만 돌아봐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재물이 있으면 지식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재물이 있다고 무조건 지식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지식이 있으면 교양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식이 있다고 무조건 교양이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또 교양이 있으면 성숙한 인격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교양이 있다고 무조건 성숙한 인격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성숙한 인격을 갖춘 사람은 다 하나님을 믿었으면 좋겠지만
성숙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또 재물은 많이 가졌지만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지식은 많이 가졌어도 교양은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우리는 물질만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보니까
우리가 겪는 어려움 중에도 물질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물질이 많으면 어려움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질이 부족해서 겪는 어려움도 있지만
물질이 풍족해도 사라지지 않는 어려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가진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오늘말씀에 나오는 삭개오를 보십시오.
삭개오가 사는 곳은 여리고였습니다.
여리고는 땅이 비옥해서 농사가 잘 되고
향유 생산지로도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또 여리고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상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국제무역의 중심지여서
그만큼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삭개오 역시 2절에서 보는 대로
부자로서 아쉬운 것 없이 모든 것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삭개오의 삶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7절을 보면
삭개오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사람들에게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삭개오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에게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삭개오라는 이름은 순수하다, 순결하다는 뜻입니다.
아마 이름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일 것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이름과 다르게 순수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2절을 보면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세금을 거두는 세리의 책임자였습니다.
세금은 기본적으로 나라의 살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거두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더구나 삭개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에게서 거두는 세금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 같은 사람은
유대인이면서도 로마제국을 위해서 세금을 거두니까
유대인들이 볼 때는 매국노였고 죄인이었습니다.
특히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다른 세리들까지 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당시에는 거두는 세금 액수를
세리가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리가 거둔 세금 중에서 로마제국에 내는 것은 일부였고
나머지는 세금을 거둔 세리가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삭개오로서는
기왕에 매국노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재물이라도 많이 모으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삭개오는 실제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세금을 거두어서 재물을 모았기 때문에
삭개오는 재물을 모으면 모을수록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으로 여기는 정도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삭개오로서는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어도
참된 만족이나 행복을 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물론 복음서를 보면 예수를 만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삭개오를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예수를 찾아온 목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을 고치러 찾아왔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슨 큰 권세를 얻고 물질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예수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고 싶어서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에 비해서 삭개오는 어떻습니까?
분명히 삭개오도 예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가 예수를 찾아온 것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권세나 물질을 얻고 싶어서 찾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 찾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3절을 보면 삭개오는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삭개오는 다른 목적으로 예수를 마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려고 했던 사람들 가운데
그 목적이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3절에 “보고자 하되”라는 말은
예수를 보고 싶은 마음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즉흥적으로 생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 보는 대로
예수를 만나려는 사람은 많고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아마 사람들과 관계가 좋았으면
앞쪽으로 가면 얼마든지 예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사람들이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앞으로 보내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새 번역에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헸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안 그래도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비난했는데
키가 작아서 뽕나무에 올라갔으니
사람들은 더욱 심하게 비웃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이런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누가복음 19:5).
분명히 그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삭개오는 오늘 처음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일부러 뽕나무 위를 쳐다보시면서
처음 만난 삭개오의 이름까지 부르셨습니다.
삭개오는 한 번 만나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예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삭개오의 이름까지 부르시고
아예 삭개오의 집에 하룻밤 머물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다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뽕나무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자기 이름까지 부르시면서
내려오라고,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로서는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6절에서 보는 대로
급히 뽕나무에서 내려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옶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누가복음 19:8).
삭개오가 하는 말은 실제로 율법에 정해놓은 규정입니다.
지금까지 삭개오는 이 율법을 어겨서라도 움켜쥐려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율법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움켜쥐기만 했던 손을 이제는 벌리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삭개오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또 강요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자원해서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누가복음 19:9).
삭개오가 자원해서 회개를 하니까
예수께서 그의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삭개오도
다른 유대인과 똑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습니다.
그야말로 구원 받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삭개오에게 일어난 일을 거꾸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삭개오는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구원 받은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까?
자원하는 회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삭개오는 어떻게 자원해서 회개를 할 수 있었습니까?
결코 자기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만나고 싶어 하던 예수께서 만나주시고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삭개오는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움켜쥐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함께 하시고 나서는
더 이상 움켜쥐지 않고 손을 벌리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보의 글에 소개한 것처럼
회개는 은혜의 길이고 생명의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10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10).
물론 여기 잃어버린 자에는 삭개오가 포함됩니다.
하지만 과연 잃어버린 자가 삭개오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 역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예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잃어버린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삭개오에게 함께 하신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로운 피조물답게
구원의 기쁨이 넘치는 믿음과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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