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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설교제목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본문말씀 누가복음 23:39-43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11-24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39-43
 
겨울은 흔히 소멸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교회의 나무들만 해도
아직 이파리가 떨어지지 않은 나무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 거의 모든 나무들이 이파리가 떨어지고 가지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나무들부터가 겨울이 되면
이파리는 소멸시키고 가지만 남긴 채로 생장을 멈추게 됩니다.
동물들 역시 겨울철이 되면 활동이 줄어들고
심지어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사람도 겨울에는 활동이 줄어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나무는 꽃이 피고 새로운 이파리가 돋아나고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도 다시 활동이 늘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은 끝이 아니라 추위를 잘 견뎌서
봄에 생명을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자기를 소멸하셨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오히려 다른 사람을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십자가 사건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당신 자신으로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야말로 억울한 모함을 받아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슬프고 속상한 일입니까?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십자가의 죽음을
전혀 억울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기도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을 슬프고 속상하게만 생각하셨으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저주하는 기도를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저주하는 기도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들까지 구원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십자가 사건은 슬프고 속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말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는
참 목자, 참 메시야, 참 왕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부터가 메시야,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께서
어떤 메시야이시고 어떻게 구원을 이루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라고 하면
아주 막강한 힘과 권세와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메시야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들을 로마로부터 구원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라는 메시야는
로마보다 더 큰 힘과 권세와 능력을 가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물론 복음서를 보면 예수 역시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놀라운 능력과 힘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왕으로 모시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예수께서는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큰 힘과 권세와 능력을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까?
사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권력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기의 힘과 권세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무시하고 해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권력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결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서 그 어디를 찾아봐도
예수께서 자신을 위해서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힘과 권력을 사용하신 경우는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 누구도 고치지 못했던 질병을 얼마나 많이 고쳐주셨습니까?
또 예수께서는 자신의 권세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죽은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시기까지 했습니다.
또 거센 풍랑도 정복하시고 물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런 일을 행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오직 세상을 살리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힘과 권세로 행하시는 사역은
대체로 앞부분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4복음서 모두 뒤로 갈수록
힘과 권세를 가지신 예수에 대한 말씀이 줄어듭니다.
그 대신에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시는 예수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은
힘과 권세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언제 어디서
다 이루었다고 구원의 완성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죽은 나사로나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아무도 고치지 못한 질병을 고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귀신을 쫓아내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고 거센 풍랑을 정복하거나 물위를 걸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구원의 완성을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구원이 완성되는 십자가 사건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구원이 완성되는 현장이니까
모든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 감사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말씀을 한 번 보십시오.
과연 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 감사를 드렸습니까?
아무리 말씀을 살펴봐도
오직 한 사람,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 한 강도 말고는
어느 누구도 예수께 감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음모를 꾸미고 멸시하고 조롱하고 배신만 할 뿐이었습니다.
우선 바리새인과 제사장은 예수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군병들은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남을 구원하느냐고
예수를 비웃고 희롱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멀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 강도까지도
예수께 비난만 일삼을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 목자, 참 메시야, 참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인간의 태도였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인간 세상의 이치로 보자면 당연한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세를 누리는 지도자에게는
따르는 사람이 아주 많지 않습니까?
또 현재는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앞으로 권세를 얻을 수 있는 지도자라면
그에게도 적지 않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지금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구원이 완성되는 현장이라고는 하지만
우선 눈으로 볼 때는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왕의 권세나 존귀함은 고사하고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비참한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물론 예수의 머리 위에도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명패는 조롱거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현장에 있던 사람 모두가
예수를 놀리고 비웃고 멸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말씀을 보면
우리의 상식을 깨뜨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또 다른 강도였습니다.
그는 40-41절을 보면 예수를 멸시하는 동료를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그렇게 예수를 희롱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야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더라도
예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강도가 사전에 예수와 무슨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역시 예수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오직 머리 위에 조롱거리로 붙여놓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께서 아무런 잘못이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
나아가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서 참 메시야라는 사실!
이런 사실만은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 뭐라고 했습니까?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누가복음서 23:42).
비록 늦었지만 자기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43).
 
물론 우리 역시 이 은총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실제로 누구든지 이 은총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참 메시야로, 만왕의 왕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를
참 메시야로, 만왕의 왕으로 믿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역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은총의 말씀을 듣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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