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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황현석 2018.03.06 17:41 조회 수 : 13

설교제목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본문말씀 누가복음 10:30-37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8-03-04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누가복음 10:30-37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나오는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이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교사와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율법교사가 예수께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니까
예수께서 그 답변으로 하신 말씀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율법교사이니까 율법의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25절을 보면 이 질문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의 전문가인 자기도 쉽게 풀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영생은 말 그대로 영원한 삶이니까
죽음의 권세를 이겨야 누릴 수 있는 삶입니다.
또 아무리 영원히 살아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생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영생은 죄의 문제도 해결해야 누릴 수 있는 삶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봐도
영생에 대한 신앙고백은 제일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 앞에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신앙고백이 먼저 나옵니다.
그러니 이 율법교사가 얻기를 원하는 영생은
죄와 죽음의 문제까지 모두 해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보면 이 율법교사에게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세 가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이 율법교사는 율법의 전문가답게 율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는 율법에 대한 실천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26절을 보십시오.
이 율법교사가 예수께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누가복음 10:26).
네가 알고 있는 율법에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율법교사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누가복음 10:27).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정말 조금도 막힘이 없이 청산유수같이 대답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율법교사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분명히 이렇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는 영생을 얻는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자신은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말에도 “바담 풍, 바람 풍”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바람 풍”이 맞다고 가르쳐주면서도
자기는 계속 “바담 풍”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28절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누가복음 10:28).
여기 살리라는 말씀은 영생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아무리 잘 가르친다고 해도
행동과 실천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속담에도
“아는 것은 힘”이라고도 했지만 “아는 것이 병”이라고도 했습니다.
아는 것은 똑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힘도 되고 병도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의 말씀대로 하자면
우리가 아는 것이 힘이 되기 위해서는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아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알아도 그것은 힘이 아니라 병이 되고 만다는 것이지요.
분명히 이 사람은 율법교사로서 율법의 전문가입니다.
그만큼 율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
예수의 말씀이었습니다.
알고 있는 율법을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29절을 보십시오.
분명히 이 율법학자는 영생을 얻는 길을 알고 있었고
예수께서도 행동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율법교사는 또 다시 예수께 묻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내 이웃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 앞에 뭐라고 했습니까?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누가복음 10:29).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이 예수께 자기 이웃이 누구인지 물은 것은
정말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옳게 보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대로 하면 이 율법교사는
이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행동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지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기를 나타내는 겉모습과 형식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지를 이미 알았지만
여전히 영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이 사람은 정말 이웃을 몰랐고 이웃이 없었습니다.
예수께 잘 보이고 싶어서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는데
실제로 이 사람은 자기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자기는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 가르치려고 하니까
누가 이런 사람과 이웃이 되고 싶겠습니까?
정말 아무도 이 사람의 이웃이 되려고 하지 않았고
그러니 이 사람은 이웃이 없었고 이웃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사람에게 누가 이웃인지를 가르쳐주시는데
직접 이웃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시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실제로 험한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길에 강도가 나타나서
어떤 사람을 강탈하고 옷을 벗기고 아주 심하게 때려서
거의 죽게 해 놓고 달아났습니다.
물론 예수의 이야기를 보면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이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 사람을 보고도 그냥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 사람을 보고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는 율법교사에게
예수께서는 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과연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웃에 대해서 어떤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해도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피해서 지나쳤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예수의 이야기에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 짐작을 해 보면
그들은 과연 무슨 까닭으로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도 피해서 지나쳤을까요?
 
레위인은 원래 아무런 직업이 없는 사람입니다.
레위인이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
성전을 관리하고 제사 드리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날 때부터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이
그들의 천직이요 유일한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럼 제사장은 왜 그냥 지나갔겠습니까?
제사장은 말 그대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아주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러니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은
사람의 시체를 함부로 만질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제사장은 함부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다가
잘못하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제사장도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레위인이나 제사장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어떤 생각을 먼저 했습니까?
그 사람을 도와주느냐 마느냐를 자기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어떻습니까?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 주었습니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강도 만난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생명이 위급한 상태입니다.
다같이 이 사람을 보고도 제사장은
자기가 시체를 만질지도 모른다는 걱정부터 해서
이 사람을 피해서 지나쳤습니다.
레위인도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하고
이 사람을 피해서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지금 자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강도 만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정성을 다해 돌보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율법교사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0:36).
율법교사는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율법교사는 이웃도 자기중심으로 찾았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웃을 레위인이나 제사장 중심으로 찾지 않으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지만
사마리아 사람 중심으로 이웃을 찾으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께서는 이웃을 강도 만난 자 중심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중심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율법교사도 어떻게 대답을 했습니까?
“자비를 베푼 자”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중심으로 이웃을 찾던 사람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는 강도 만난 자 중심으로,
그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푼 자가 이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신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히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까?
물론 이런 교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시게 된 진짜 이유는
율법교사의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율법교사는 모든 율법을 다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하신 것은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율법교사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누가복음 10:37).
정말 영생을 얻고 싶다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알고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행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되
내 중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이웃을 중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그렇게 깨달아 안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되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중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 영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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