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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위엄과 사랑의 하나님

황현석 2019.03.21 11:03 조회 수 : 12

설교제목 위엄과 사랑의 하나님 
본문말씀 창세기 1:27-28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3-17 
위엄과 사랑의 하나님
 
창세기 1:27-28
 
초대교회 당시의 이단 종파 중에는
신약과 구약의 하나님을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을 위해 독생자를 희생하실 정도로
아주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에 대해서 아주 무섭게 심판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차이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까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신이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약의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단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 전부터
힘과 위엄과 권위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남성적인 분으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27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는데
남자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함께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 대로 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남자의 형상과 여자의 형상을 함께 지니고 계신 분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남자의 형상과 여자의 형상을
함께 지니고 계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형상이라고 하면 겉모습부터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형상은 겉모습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속성과 성품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의 형상과 여자의 형상을 함께 지니고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남자의 성품과 여자의 성품,
아버지의 성품과 어머니의 성품을 함께 가지셨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단번에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또 하룻밤 사이에 이방 군대 185,000명을 전멸시키셨습니다.
이런 능력은 남자의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남자의 성품과 더불어
여자의 성품도 함께 지니고 계십니다.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는 어린 아이의 표정만 보고도, 울음소리만 듣고도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압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성품도 함께 지니고 계십니다.
실제로 이사야 66:13을 보십시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이사야 66:13).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주일예배 때 살펴본 누가복음 13:34에서
예수 역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누가복음 13:34).
비록 표현은 암탉과 새끼라고 했지만
그 뜻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된 것 역시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성품을 지니셨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버지의 권능과 위엄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자비도 함께 가지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는 권능과 위엄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또 때로는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살펴주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이든지 처음은 참 특별하고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는 대체로 처음이 어떠냐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다음
우리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창세기 1:28).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5:1-2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세기 5:1-2).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며칠이나 몇 달을 지나서 주신 것이 아니라
2절을 보면 “그들이 창조되던 날” 바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가장 먼저 하신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요구나 명령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제일 먼저 주신 복은 과연 무엇입니까?
이재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애프터서비스(After Service)라고 했습니다.
보통 비싸고 좋은 제품일수록 애프터서비스가 철저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제품도 애프터서비스가 좋지 않으면
제대로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자동차의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사 하나만 풀려도 아주 위험한 흉기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가의 제품일수록
애프터서비스가 얼마나 잘 되는지를 함께 고려해서 구입을 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좋아 보이는 제품이라도 애프터서비스가 시원찮으면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분명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귀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애프터서비스가 없다면
아무리 귀하게 만들어졌다고 해도
나사가 빠진 자동차처럼 흉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창조하신 모습을 제대로 간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애프터서비스가 있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애프터서비스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가장 먼저 주신 복입니다.
실제로 창세기 5:2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우리 인간을 사람이라고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세기 5:2).
순서로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먼저 받은 다음에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우리에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통해서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애프터서비스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애프터서비스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제품을 잘 사용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휴대폰을 구입하는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휴대폰을 구입할 때 성능과 디자인뿐만 아니라
나중에 고장이 났을 경우에 대비해서
애프터서비스가 얼마나 잘 되는지도 살핍니다.
하지만 휴대폰의 목적은 전화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프터서비스가 중요하다고 해도
휴대폰이 애프터서비스만 받는다고 하면
그 휴대폰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복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애프터서비스센터에 맡겨진 휴대폰과 똑 같습니다.
휴대폰의 목적이 전화통화에 있듯이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 역시 복 자체가 아니라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는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훈련시키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13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창세기 15: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어 이방인을 섬기는 종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나 일이년이 아니고
무려 400년 동안이나 종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좋은 것만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400년 동안의 혹독한 종살이였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과연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랑의 보살핌 대신에
가혹한 종살이를 준비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를 훈련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어야 할 400년의 종살이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랑의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군대 훈련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장교가 될 사람들은 일반 사병들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훨씬 더 강도가 높은 훈련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장교는 사병들을 통솔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훈련시키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40년 동안을 살인자로, 도망자로 광야에서 지내게 된 것은
결국 하나님의 훈련과정이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은 아주 어릴 때 하나님께 왕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왕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사울의 칼을 피하기 위해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을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모두가 사랑하는 다윗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훈련과정을 잘 견뎌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 국기에 그린 별을
다윗의 별이라고 할 정도로 다윗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를 훈련시키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한 번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아버지의 위엄과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일수록
더욱 강한 훈련을 시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여러 가지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오히려 우리를 더욱 강하게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위엄과 어머니의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또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그 모든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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