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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05/12] 삼위일체 하나님

황현석 2019.05.15 13:02 조회 수 : 60

설교제목 삼위일체 하나님 
본문말씀 사도행전 2:1-4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5-12 
삼위일체 하나님
 
사도행전 2:1-4
 
지금까지 오후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고,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또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지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살펴봤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시도가
단순히 우리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정말 우리가 바른 관계를 맺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알고 봤더니
스스로는 도저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시고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예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6을 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26).
바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봉독한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실제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초대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와 함께 하는 성령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1:2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2).
여기 “하나님의 영”은 바로 “성령”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보면 성령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창세기 1:26이 아주 좋은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세기 1:26).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혼자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둘 이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실제로 성경원어를 보면
하나님은 여호와라고도 하지만 때로는 엘로힘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엘로힘은 언제나 우리라는 말처럼 복수형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 이상하게도 여기에 쓰이는 동사는 단수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성경원어의 문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지만
따로따로가 아니라 늘 함께 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자와 성령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신약시대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성자와 성령은 이미 창세기 처음부터 성부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선은 하나님은 한 분이신 동시에 세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할 때
쉬운 예로 드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역할입니다.
한 번씩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집니다.
교회에서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이지만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입니다.
또 우리는 누구나 나름대로
이 여러 가지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이런 역할을 잘 감당을 해도
동시에 여러 곳에 함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있을 때는 집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 집에 있을 때는 교회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한 분이신 하나님은 세 분이시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과는 다르게 여러 곳에서 동시에 사역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기만 했다면
성자 예수의 몸으로 이 땅에 계시던 동안은
하늘은 텅 비어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신 동시에 세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감당하시는 동안에도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저마다 다른 사역을
동시에 행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실 때
하늘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우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 위에 임하셨습니다.
또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도 우리는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동시에 서로 다른 사역을 펼치시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 하나님은 비둘기처럼 임하시고
성부 하나님은 하늘에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이 모든 일들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세 분이시면서 또 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 분이라는 것만 강조해서
한 분이라는 것을 소홀하게 여긴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제각각의 서로 다른 신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세 분의 뜻이 다른 경우도 생길 텐데
그럼 과연 우리는 누구의 뜻을 따라야 될지도 모르고
그만큼 혼란스럽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시기 때문에
동시에 서로 다른 사역을 펼치시면서도 결코 그 뜻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창조의 사역,
성자 예수께서 펼치시는 구원의 사역,
성령 보혜사께서 펼치시는 인도의 사역은
결코 분열되지 않고 언제나 완전한 일치와 통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참된 일치와 통합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일치와 통합이라고 하면 우리는
모든 것이 똑 같아야 한다는 생각부터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치는 결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역이 함께 어우러져서 일치와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서로 다른 면이 있어도
완전히 잘못되거나 어긋나지만 않으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참된 통합과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물론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해도
하나님이 한 분이면서 세 분이시고,
세 분이면서 한 분이시라는 사실에 대해서
미심쩍어 하고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지도자였던 터툴리안도
삼위일체에 대해서 좀 더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태양을 예로 들어서 설명을 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분명 둘이나 셋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런데 태양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기도 하고 따뜻한 열이 되기도 합니다.
분명 태양은 하나인데 실제 역할을 보면 셋이고
셋이 서로 다른 역할이지만 결국에는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1800-1900년 전에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봐도 얼마나 쉽게 설명을 했습니까?
 
그 외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많은 설명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밝혀내고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길을 걷는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다리가 불편하거나 사고가 난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가 지금 왼발을 띠고 있는지,
오른발을 띠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오른발 왼발을 따지면서 걸음을 걷는다면
그 걸음이 얼마나 많은 신경이 쓰이겠습니까?
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건강한 두 다리로 마음껏 걸을 수 있지 않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명을 통해서 이해를 하고 믿으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실 수 있고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실 수 있다고 믿으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니라
놀라운 은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삼위일체를 믿게 되면
정말 참된 신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신에 대한 인간의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가장 저급한 관점이 다신관입니다.
다신관은 말 그대로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신관에 의하면
산마다 산신이 있고 마을마다, 거리마다 수호신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신들이 많다보니
각각의 신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아주 작습니다.
산신은 그 산에서만 활동을 하고
마을의 수호신도 그 마을에서만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산이나 마을을 벗어나면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
 
이보다 좀 더 발전한 관점이 일신관입니다.
하나의 신이 한 나라나 한 민족을 다스린다는 관점이기에
다신관과 비교하면 신의 활동영역이 아주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일신관에서는 신의 활동영역이 아무리 넓어도
민족이나 나라를 넘어서면 조금도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간 관점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유일신관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느 산이나 마을 하나에만 역사하는 분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믿는 어느 한 나라나 민족만 다스리는 분도 아닙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다스리는 분이 아니라
열방이라고 해서 세계의 모든 민족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계의 모든 민족,
더 나아가서는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세상의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을 주관하실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세 분이시고,
세 분이시면서 한 분이신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로서는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총입니까?
 
물론 우리는 때에 따라 하나님을 성부 하나님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또 성자 예수부터 찾을 때도 있습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보혜사 성령을 먼저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부 하나님을 부를 때도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십니다.
또 우리가 성자 예수를 찾을 때도 성부와 성령께서 같이 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먼저 찾아도 성부와 성자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지 함께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성령에 대해서 살펴보는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으면서 다른 곳에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한결같은 모습을 가지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모든 역사는
결국 완전한 일치와 통합을 이루게 됩니다.
또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비롯해서 그 어떤 제약도
모두 뛰어넘어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해명하거나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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