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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05/19] 보혜사 성령

황현석 2019.05.21 10:23 조회 수 : 25

설교제목 보혜사 성령 
본문말씀 요한복음 14:16-17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5-19 
보혜사 성령
 
요한복음 14:16-17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우리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우선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을 알고 보니까 근본적으로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근본적으로 죄인이었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우리는 또 한 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땅에 오셔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입니다.
특별히 지난 시간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 펼치시는 역사는 언제나 완전한 일치를 이루십니다.
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시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역사는
결국 우리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참으로 크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특별히 성령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 함께 봉독한 본문말씀에서는
성령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16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보혜사는 위로자, 돕는자라는 뜻으로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인격을 가진 인격자로 소개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도
우리는 본받아야 할 인격자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성령도 마찬가지로 인격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도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본을 받고 닮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특히 성령이 보혜사로서 위로하고 돕는 것처럼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우리는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면
아주 뜨겁고 열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부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도 아무런 막힘이 없고
큰 소리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해야
성령이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소개하신 성령은
보혜사로서 위로하고 돕는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이런 성령을 생각하면 과연 어떤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까?
비록 입술로 하는 기도는 서툴고 어눌해도
성령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성령을 본받아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돕는 일에 힘쓰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17절을 보면 이번에는 예수께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영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진리를 통해서 듣고 보고 말하고,
진리를 통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과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본받게 되면
자연히 우리 역시도 진리 안에 거하는 가운데
진리가 드러나는 삶을 살게 되고
바로 이런 삶을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렇게 보혜사가 되고 진리의 영이 되는 성령이
감당하는 역할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4;26을 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26).
이 말씀에 의하면 성령은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 온전한 뜻을 깨닫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든지
주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런 성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과 사람에게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행할 수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대로 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설사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할 때는
미처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의식중에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이렇게 우리는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떳떳하고 보람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
오히려 감추거나 숨기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과연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이겠습니까?
이 역시 오늘말씀대로 하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다음으로 요한복음 16:8에서도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성령의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8).
이 말씀에 의하면 성령은
우리의 믿음과 삶의 잘못된 부분을 책망하셔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성령의 역할을 통해서
건강한 양심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령은 책망만 하시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6:13을 보면 성령은 진리의 영답게
우리 인간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만일 성령께서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 책망만 하신다면
성령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가까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은 책망만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럼 이런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할 때
우리 인간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사무엘상 16:13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사무엘상 16:13).
사무엘이 다윗을 택하여 기름을 부었다는 말씀인데
그 결과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어느 한 순간의 감동이 아닙니다.
“이 날 이후로!”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그날 후로 계속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윗의 삶이 다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을 받고 나서도
너무나 크고 많은 위험과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모든 위험과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이렇게 놀라운 감동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로 든 사람은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믿음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다윗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바로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친다고 해도
결코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감동시키신 성령께서 그 모든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9:31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사도행전 9:31).
이 말씀에 의하면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성령의 위로가 어떤 것인지는
인간의 위로와 비교를 해보면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위로는 말로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위로는 그저 말로만 그치고
아무런 능력이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인간의 위로는 아무리 받아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위로는 어떻겠습니까?
성령의 위로는 결코 말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위로는 변화와 해결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감당하기 벅찬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도
성령의 위로를 통해서 더욱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또 로마서 5:5에서는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로마서 5:5).
사실 이것은 믿음의 이치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니까
우리는 당연히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서 15:13).
또 성령의 역사는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서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로마서 15:16).
또 성령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유를 누리게 해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3:17이 바로 여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17).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그 어떤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고 참된 자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또 성령은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시기도 합니다.
삼손이 바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 14:6을 보면 삼손에 대해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 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사사기 14:6).
물론 성령의 능력은 삼손만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은 누구나 놀라운 능력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5:22-23에 의하면
성령은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기도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와 비교가 되는 것이 성령의 은사일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성령의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는 인격과 무관하게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부족해도 방언을 행할 수 있고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 중에는
인격적으로 우리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인격의 변화가 없이는 절대로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성령의 열매는 하나같이 인격의 기초 위에서 맺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면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성령이 어떤 존재인지
성령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이런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은혜를 누리게 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성령은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분입니다.
또 성령은 진리의 영이 되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 행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아울러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때그때마다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그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하십니다.
혹시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책망하시고
친히 앞장서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바로 이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과 소망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변화되고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며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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