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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08/04] 하나님 앞에서

황현석 2019.08.23 11:23 조회 수 : 4

설교제목 하나님 앞에서 
본문말씀 에베소서 6:5-9 
설교자 임명국 목사 
설교일 2019-08-04 
하나님 앞에서
 
에베소서 6:5-9
 
어떤 한 사람이 비행기의 조종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본을 들고서, 비행기를 조종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본에는 엔진 시동은 어떻게 걸고, 조종간을 어떻게 움직여서 이륙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이 아주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비행기에 대해서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책에 쓰여 있는 대로 하나하나 그 과정을 따라 했더니 드디어 멋지게 이륙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까 아름다운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하늘을 나는 그 기분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연료도 다 떨어져 가고 해서 착륙을 하기 위해서 다시 교본을 펴들었는데, 그 사람의 그 즐겁던 얼굴은 이내 사색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유는 그 교본 책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착륙 편은 다음 호에 계속.”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고된 노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작은 움직임 하나도 다 일이라는 뜻입니다. 
먹는 것도 일입니다. 그래서 한자로 ‘먹는 일’이라고 해서 ‘식사’라고 합니다. 노는 것도 일입니다. 우리는 크든 작든 여러 가지 일들을 항상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을 배우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조종법을 잘 모르면 그냥 날아가는 정도만 할 수 있겠지만, 조종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면, 비행기를 멋지게 조종하면서 곡예비행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결정적으로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방법을 모르게 되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일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일 그 자체 못지않게 중요하고, 어쩌면 일보다도 일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말씀은 종과 주인들에게 주는 교훈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노예가 있고,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 상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를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며, 일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든 종,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해서 일하고 섬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요구되는 첫 번째 방법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5절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정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성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외적인 조건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조건 속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바빠서 일할 시간이 없고, 내 나이가 이제는 젊지 않아서 일할 수 없다고 핑계하는 것이 아니라, 또, 사람들 앞에서는 성실한 척하면서 누가 자신을 봐주고 알아줄 때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 그런 불성실한 모습이 아니라,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 그것이 오늘 헌신하며 나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요셉과 같이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성실하게 맡은 바 일들을 완수하는 그런 성실한 헌신의 모습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두 번째 방법이 나옵니다. 7절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대단히 열심 있게 모든 교회 일들을 도맡아서 수고하던 여신도회 회장님이 갑자기 하던 일들을 다 내팽개치고 봉사는 하지 않고, 주일에 예배 출석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분을 불러서 ‘왜 갑자기 교회에서 봉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저도 이제는 마르다처럼 교회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마리아처럼 예배만 드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저한테 교회에서 봉사하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얘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에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서 열심히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자기를 도와주지 않고 예수님 앞에서 말씀만 듣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가서 마리아를 책망하면서 자기를 돕게 해달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마리아는 옳은 일을 했고, 마르다는 잘못했다고 책망을 하신 말씀이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열심히 봉사하는 것은 잘못 되었고,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 모습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봉사하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고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마르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마르다가 일을 많이 한 것, 음식을 많이 준비한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하지 못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많은 일로 인해서 마음이 분주했고, 염려하고 근심했습니다. 그럴 바에는 몇 가지만 하고, 분주하지 않은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마리아에 대해 화가 나 있었고, 나만 고생한다는 피해의식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마르다는 예수님께도 화가 나 있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않으시나이까.”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일한다고 하면서도, 동생에게도 화가 나 있었고, 예수님께도 화가 나 있었어요. 
자신이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힘들고 전혀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봉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아무리 주님의 일을 많이 맡아서 수고한다고 해도,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런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운동도 즐겁게 해야 건강에 좋다고 하죠? 무조건 운동만 하면 몸에 좋은 줄 알고, 일어나기 싫은데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서, 뛰고 싶지도 않은데, 억지로 달리기를 하고 그러면, 몸에 유익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억지로 하게 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됩니다. 
 
리빙스턴이 그렇게 좋은 학벌과 조건들을 다 뒤로 하고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선교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안타까워하면서, 어떻게 당신 같은 인재가 그런 일을 하느냐고 했을 때 리빙스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아프리카 선교에서 희생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생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리빙스턴의 삶이 힘들게 보였지만, 리빙스턴은 그런 힘든 수고가 수고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는 감사함과 기쁨으로 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별 것 아닌 일도 억지로 하게 되면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기쁨으로 하면 일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내게 주어진 일들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바쁘고 분주하고 짜증이 나는데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방법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실수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하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은 조만간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 가능성이 크다. 
만약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한다면 그 교제에서 얻어지는 충만함과 마음속의 평안함이 없기에 하나님의 일을 계속할 수가 없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르다는 자신의 분주한 일로 인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마음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맹목적인 수고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없이 하는 봉사는 반드시 마르다처럼 시험 들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힘을 얻지 못하면, 일로 인해서 지쳐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삶은 힘든 것 같고,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는 몹시 무거운 것 같지만, 그 얼굴에 여유가 있고,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재미,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오는 기쁨과 만족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가 택한 길이었습니다. 그 마리아처럼, 우리 모두도 늘 하나님과 교제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해 나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일하는 방법은 5절과 7절에서 언급된 대로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 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종이 그 주인이 무섭고 두려워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주님께, 내 최고의 정성을 드려서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일할 때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가 취하는 행동이 다른 것을 봅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어떤 직분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는 깍듯이 대하면서, 또 어떤 직분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는 심하게 표현하면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대하든지, 한결같이 주님께 하듯이 일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어떤 것도 아낌없이, 지극한 정성으로 대하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 아깝고, 무엇이 힘들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일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을 본 아가씨는 부산에 사는 처자였습니다. 부산 사투리를 사용하고, 키가 작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부산까지는 너무 멀어서 죽어도 못 내려가니까, 서울에 언니네 집에 오게 되면 그때나 만나자.”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려면 너무 힘드니까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나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좀 더 친해지니까, 이제는 대구까지 내려 갈 테니까, 부산에서 대구까지만 올라오라고 해서 대구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죽어도 부산까지는 못 내려간다던 사람이 부산까지 내려가게 되었다는 거지요. 
 
왜 그랬을까요? 부산까지는 죽어도 못가겠다고 말했던 그 청년이 부산까지 내려가서 만나겠다고 했을까요? 왜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니까!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아무리 힘든 일도 힘든 일이 아니요. 사랑하면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 그런 경험들 있으시죠?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한다면, 어떤 일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누구에게든지, 사랑하는 주님께 하듯,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일하는 우리가 모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일 그 자체보다 일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일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성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기쁨으로 하는 것이고, 주님께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에, 성실하게 기쁨으로 주님께 하듯이 일함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더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더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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