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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

[09/08] 나는 죽었습니다

황현석 2019.09.17 16:52 조회 수 : 10

설교제목 나는 죽었습니다 
본문말씀 로마서 6:6-8 
설교자 진상목 목사 
설교일 2019-09-08 
나는 죽었습니다
 
로마서 6:6-8
 
할렐루야!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낮고 천한 이 땅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랑할 것은 십자가 뿐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럼 옆에 앉으신 분들에게 자랑 한 번 해볼까요? 어떻게 자랑할까요? 이렇게 고백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 때문에 오셨습니다.”, 뒤에 한 마디 더 붙여 볼까요? “나, 이런 사람입니다.” 이 때는 어깨에 힘 좀 주셔도 됩니다. “나, 이런 사람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께서 나 때문에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생명을 내어주실 만큼 나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멘)
 
그럼, 나만 존귀합니까? 아니죠. 한 번 더 고백하겠습니다. 옆에 보시고, “예수님이 당신 때문에 오셨습니다.”, 또 뒤에 붙이셔야죠?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은 그렇게 존귀한 사람입니다.
 
진짜 존귀한 사람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신 있게 이렇게 존귀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전제는 예수님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없으면 어디 가서 이런 칭찬과 대접을 받겠습니까? 혹시 모르지요. 교회에서는 열심히 섬기는 자리에 계신데, 다른 곳에서도 잘 대접받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빠진 자리는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존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거룩하게,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이신칭의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잘 연결시켜 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먼저 7절의 말씀을 한 번 볼까요? 함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아멘.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누가 그렇다고 합니까? “죽은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는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옆에 분에게 질문을 한 번 해볼까요? 이렇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죽었습니까?”,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믿음으로 오늘의 제목을 고백하길 원합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죽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소리가 점점 작아집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말씀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순절이 되고, 고난주간이 되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참 쉽게, 참 많이 이야기하는데, 내가 죽는 것은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만 강조하지, 예수님이 나와 함께 죽으셨다는 것은 쉽게 놓쳐버립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4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에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만 죽으신 십자가가 아니라, ‘나도 죽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모두 옳은 말이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인식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라는 인식은 우리의 삶에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여기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예수님은 그냥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고, 나는 나대로 살아갑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고백이 있는데, 나는 그 고백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도 죽은 십자가를 늘 묵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삶의 기준이 주님께 있습니다. 모든 선택의 기준에 주님이 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고백을 너무나 잘 아시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믿으십니까?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고백일 줄 믿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님들이 세례를 받아도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고민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직 안 죽은 것 같은데?” 이런 고민들 하시죠? 특히, 열을 한 번 확 내고 나면, 뚜껑 한 번 열리고 나면 기도하면서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 아직 안 죽은 것 같습니다.” 혹시 저만 그런가요?
 
나름 열심히 살아도, “나는 죽었습니다.”라는 고백은 참 쉽지 않은 고백입니다.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자신이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이 드냐 하면, 나의 옛사람이 죽었으면 나의 이 성질도 좀 사라지고, 욕심이나 분노도 사라지고, 이기심도 없어져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노래하듯이 내가 강 같은 평화, 바다 같은 사랑, 샘솟는 기쁨이 막 넘쳐나고, 예수 안에서 화목하고, 사랑하고... 막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가 죽는다는 것을 성질, 욕심, 분노, 이기심이 사라지는 것으로 이해하니깐 어떻게 되나요? 평생 죽었다 살았다, 다시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를 정신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사는데 그 놈의 성질이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러다보니 나는 죽었다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은 분명한데, 자신이 죽었다고 하는 믿음은 너무나 희미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나의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악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6절에서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즉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우리의 ‘옛 사람’입니다. 죄에게 종노릇하는 우리의 옛 사람입니다. 그렇게 내 자아는 죽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살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혈기, 욕심, 분노, 이기적인 마음, 음란한 마음은 우리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옛사람은 죽었지만 우리의 죄성은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죄에게 종 노릇하며 살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육신의 욕구는 여전하지만, 그 욕구를 따라 살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주님과 혼인관계로 많이 비유합니다. 어쩌면 이 관계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자아가 죽는 것임을 정확히 알려주는 비유입니다.
 
요즘 기사를 보면 사람들이 결혼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결혼을 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즉 결혼을 하면 자아가 죽어져야 되는데, 그것이 싫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아의 죽음이 꼭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결혼생활이 불행한 것은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굳이 설명하지 하지 않아도 우리 성도님들이 저보다도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자아가 죽은 사람의 결혼생활이 행복한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 안에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자아는 죽고,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께 맞추어서 살아가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삶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죽으면 행복해집니다. 전에는 내 자존심 내 세워서 내 감정대로, 내 혈기대로,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모든 것 내 마음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그 옛사람은 죽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사는 것... 이것이 죽은 자의 삶입니다.
 
그렇게 죽어야지 우리는 거듭날 수 있습니다. 죽지 않은 자는 거듭남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의 죽음을 믿는 것이 거듭남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옛사람의 죽음을 믿지 못한 채 자신의 죄만 용서받기를 간구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죄짓고 회개하고 다시 또 죄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회개도 시들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믿음은 굳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근원에 8절의 말씀을 잘 새겨 두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지 또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옛사람의 죽음은 우리가 죽이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죽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경건하게 살다보면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육신의 욕망이 사라져서 죽은 줄 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옛사람의 죽음은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보고, 듣고,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서 이미 완전히 이루어 놓으셨음을 알고 “내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멘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믿고 감사하며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취할 때, 우리의 삶은 바뀔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옛사람이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는 살아있는 자입니다. 그렇게 속죄함을 받는 믿음을 넘어서 나도 십자가에 죽었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살아내어 교회와 가정과 일터에서, 우리의 삶의 곳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제 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개회예배에 앞서 강단 앞에 큰 관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모든 사람이 한 줄로 서서 관 속에 있는 사람에게 조의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관 속을 들여다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관 속에는 큰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고, 관 속을 들여다보는 모든 사람들은 그 곳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다시 드리기를 원합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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