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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설교제목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본문말씀 아가 2:1-17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9-05-15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아가 2:1-17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사랑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특별히 사랑을 생명의 원천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가서는 인간 서로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아가서에서 소개하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은
우리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가서가 직접 소개하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남녀 간의 사랑 그 자체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녀 간의 사랑도
얼마든지 인간사이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2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7절에서는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론이라는 곳은
넒은 평지로서 실제로 많은 수선화가 피어있었다고 합니다.
또 수선화는 우리가 봐도 별로 화려한 꽃이 아닙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들판에 많이 피어있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은 수선화에 비유를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를 수선화처럼 평범하다고 겸손하게 낮추었습니다.
골짜기의 백합화라는 구절도 같은 뜻입니다.
골짜기는 기본적으로 인적이 드물고 잘 보이지 않는 외진 곳입니다.
이런 곳에 핀 백합화도 당연히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골짜기의 백합화 역시
자기는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보통의 여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술람미 여인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서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이 뭐라고 했습니다.
2절을 보면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을 아름답게 핀 백합화처럼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이 술람미 여인처럼 우리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실제로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낮아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술람미 여인처럼 우리 자신을 낮출 때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소중히 여긴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분명히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낮추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누구보다도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하지만 바벨탑 사건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탑을 쌓아서 스스로를 높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큰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야고보서 4:6을 보십시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야고보서 4:6).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3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자기에게 그늘을 제공해주는 사과나무와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자기는 솔로몬의 사과나무 그늘에서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쉰다는 뜻입니다.
이 말 역시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 비추어보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세상의 환난과 핍박을 피할 수 있는 곳이고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3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사과나무 열매가 달았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달콤한 평안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4절에서 이 여인은
솔로몬이 자기를 잔치 집으로 데려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를 위해
기쁨이 넘치는 잔치를 베풀어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특히 여인은 솔로몬의 사랑이 자기의 깃발이라고 말합니다.
깃발은 주로 그 깃발 아래 모인 무리의 특징을 나타내거나
그 깃발 아래 모인 무리를 다른 무리와 구별하는 역할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깃발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5절에서는
술람미 여인이 자기가 사랑의 열병에 걸렸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포도로 힘을 얻고 사과로 시원함을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포도와 사과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연약하고 답답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기도 하고 시원한 해결책을 찾기도 합니다.
 
또 7절에서 여인은 노루와 들사슴을 예로 들어서 뭐라고 햇습니까?
노루와 들사슴은 놀라게 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좋듯이,
여인은 잠들어 있는 솔로몬을 흔들거나 깨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우리 그리스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용을 시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품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사이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우리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은총을 풍성히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8-14절은 술람미 여인이 지난봄에
고산지대에 있는 자신의 고향집을 찾아왔던 솔로몬을 기억하면서
하는 노래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기억하는 솔로몬의 모습은
산을 오르고 고개를 뛰어넘어 열정적으로 달려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인은
솔로몬이 자기에게 했던 사랑의 고백도 잊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솔로몬이 이 여인과 함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바로 이런 기억을 통해서
자기가 언제나 솔로몬과 함께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이 술람미 여인처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15-17절에는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이
포도원에서 목격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여우 몇 마리가
포도나무 뿌리를 파헤치며 포도원을 망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여기 포도원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뜻하는 것이고
포도원을 망치는 여우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망가뜨리는 문제를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우를 발견한 여인은
솔로몬에게 그 여우들을 잡아달라고 했습니다.
자기들 사이의 사랑을 망가뜨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써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포도원에서 여우를 몰아낸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여우를 몰아내고 다시 쳐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포도원에 돌담을 둘러쳐야하고 또 그 위에 울타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기꺼이 돌담과 울타리 공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을 망가뜨리는 여우는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적인 유혹이 여우이기도 하고
안일함과 나태함이 여우이기도 합니다.
또 교만과 재물이 여우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을 망치는 여우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런 여우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물론 내 힘으로 몰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요청했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께 여우를 잡아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돌담과 울타리를 쌓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아가서 2장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낮아져야 할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낮아진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과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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